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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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신앙의 본질"…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세미나에서 나온 자성과 실천

입력 2026.04.17 18:33 수정 2026.04.2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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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당복지재단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창립 35주년 기념 세미나 개최 산업화와 함께 밀려난 죽음 담론…"지나친 현세 신앙이 죽음을 ‘실패’로 만들었다" 진단 30년 호스피스 사역부터 중장년 삶의 재건까지… 현장에서 꽃피운 죽음교육

'교회에서의 죽음교육, 그 필요성과 목회의 과제' 세미나  ©각당복지재단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사회 전반에서 죽음 담론이 무르익고 있지만, 정작 죽음과 부활을 핵심 교리로 삼는 교회는 이 주제를 외면해왔다는 진단이 나왔다. 죽음교육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발제와 함께, 30년 넘게 호스피스 사역을 이어온 교회의 현장 실천 사례도 공유됐다.

각당복지재단(이사장 라제건)은 10일 서울 종로구 재단 신관 각당홀에서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창립 35주년 기념 세미나'를 개최했다. '교회에서의 죽음교육, 그 필요성과 목회의 과제'를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는 목회자, 죽음교육 현장 활동가들이 참여해 교회 안에서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교회와 죽음교육, 어려움의 배경과 맥락'을 주제로 발제하는 조성돈 교수   ©각당복지재단

신앙의 대화에서 사라진 '죽음'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첫 번째 발제에서 현대 한국 교회가 죽음 담론을 잃어버리게 된 신학적·사회학적 배경을 짚었다.

조 교수에 따르면 과거 한국 교회는 죽음에 매우 민감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구호는 단순한 전도 문구가 아니라 사후 운명에 대한 실존적 경고였고, 성도들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는 것을 신앙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예전 한국 교회의 신앙은 현세의 고난을 넘어선 영생복락의 추구였고, 죽음은 두려운 종말이 아니라 고통 없는 천국으로 가는 환희의 여정으로 묘사됐다.

그러나 산업화와 함께 상황이 달라졌다. 성공·효율·속도의 가치관이 교회 안으로 깊숙이 침투하면서, '멈춤'을 의미하는 죽음은 신앙적 대화에서 점차 밀려났다. 여기에 긍정의 신학이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부정적 주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믿음 없는 행위로 간주되는 풍토가 형성됐다.

조 교수는 "교회 내 죽음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신앙 부족으로 오해받는 풍토가 형성됐다"며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는 과도한 내세 신앙이 아니라, 오히려 이 땅의 복에만 매몰된 지나친 현세 신앙에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 사회의 변화도 이 흐름을 가속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죽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 퍼졌고, '100세 시대'라는 담론 속에서 죽음은 먼 미래의 일로 밀려났다. 죽음은 병원 중환자실이나 장례식장이라는 격리된 공간에서만 일어나는 '남의 일'같은 인식이 자리잡았고 터부시됐다. 조 교수는 이를 "죽음의 백치시대"라 명명했다. 우리 주변의 어르신들이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마치 백치인 척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이 실제로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분석도 제시됐다. 치매, 고독사, 연명치료 등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이 공포의 핵심이지만, 교회는 이 변화된 두려움의 지점을 읽어내지 못하고 과거의 문법으로만 응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교수는 "교회 안에서 신학적 언어로 죽음을 이해하고 묵상할 수 있는 교육 체계가 시급하다"며 "죽음교육의 시작은 죽음을 단순화하거나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가 이미 웰다잉 등을 통해 죽음을 공론화하고 있는데, 교회가 오히려 이 주제를 외면하는 것은 시대적 직무유기라는 것이었다.

 

'교회와 죽음교육, 실천을 위한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발제하는 강진구 교수  ©각당복지재단

"장례가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있다"…실천 방향 제언

강진구 고신대학교 교수는 두 번째 발제에서 죽음교육의 실천 방향과 과제를 제시했다.

강 교수는 한국 교회의 전통적 죽음교육이 목회자 설교 중심의 내세관 전달과 장례위원회 운영으로 유지됐으나, 현대에 들어 이마저 실종됐다고 진단했다. 교회 중심의 장례문화를 상조회사가 대체하면서 성도들이 현장에서 죽음을 배울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교회가 죽음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로는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인구통계학적 변화다. 현재 한국 교회는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노인 성도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죽음을 앞둔 세대에게 신앙적 확신을 주는 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 

둘째는 신앙의 본질 회복이다. 죽음준비교육은 단순히 생의 마무리를 돕는 것을 넘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소망을 실제적으로 삶에 적용하게 한다. 

셋째는 교회 이미지 쇄신과 선교적 접점이다. 죽음과 장례는 비기독교인에게도 보편적인 관심사인 만큼, 교회가 품격 있고 경건한 죽음의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폐쇄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복음 전파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강 교수는 실천 과제로 목회 철학적 관점, 교육·상담적 관점, 장례 사역적 관점의 세 축을 제시했다. 특히 장례 사역과 관련해 유교적 관습에서 벗어나 성경적 관점에 기초한 장례 의전을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례위원회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형식적인 틀을 벗어나지는 못한 현실"이라며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별세신앙'을 내면화해 준비할 때, 장례는 단순한 애도를 넘어 복음을 전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시니어부의 죽음교육 사례'를 주제로 발표한 고혜리 사모   ©각당복지재단

"10년 묵은 사별의 아픔을 처음 꺼냈다"…시니어 성도의 변화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론을 넘어 교회 현장의 실천 사례들도 공유됐다. 

인천 부평구 동수감리교회(주학선 목사)의 '행.삶.아.이(행복한 삶, 아름다운 이별)' 프로그램은 교회 내 시니어 죽음교육의 구체적 모델을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은 2023년 교회 내 장례가 급증하면서 시작됐다. 평생 함께 신앙생활을 해온 교우들의 연이은 별세 소식과 시니어 성도들의 막연한 두려움, 사회 복지관 등 교회 밖 시설 이용에 대한 이질감이 도입의 배경이 됐다. 기존 실버스쿨이 소비적인 일회성 행사에 머물렀다는 한계 인식도 작용했다.

죽음교육지도자과정을 수료한 고혜리 사모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을 맡았다. 6주 과정으로 구성된 커리큘럼은 죽음 인식 개선과 신앙적 토대 형성을 위한 강의에 악기 합주, 포크댄스, 어린 시절 놀이 체험 등 공동체 활동을 결합했다.

참가자들의 변화는 뚜렷했다. 10년 넘게 사별의 아픔을 말하지 못했던 성도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아픔을 꺼냈다. 유언장을 작성하며 자녀들에게 물려줄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남은 삶의 목적을 재발견하는 이들이 생겼다. 

장례위원회가 활성화돼 교우의 장례를 자신의 일처럼 위로하고 돕는 '거룩한 동행'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월 1회이던 시니어 모임은 격주로 늘었고, 현재 3기 운영을 계획 중이다.

고 사모는 "교회 내의 죽음교육은 노년의 삶을 빛나게 하는 영성훈련"이라며 교회 안에서 죽음교육이 자리 잡기 위해 △죽음교육을 단순한 교양이 아닌 필수 신앙 교육으로 인식하는 것 △시니어의 정서와 신앙적 필요를 이해하는 전문 지도자 양성과 커리큘럼 도입 △죽음을 평안히 수용하는 어른 세대의 '거룩한 유산 전수'같은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중장년 층의 죽음교육 사례'를 주제로 발표한 금위연 전도사  ©각당복지재단

중장년층도 죽음을 배운다…"두려움에서 감사한 준비로"

인천 주안중앙교회(박응순 목사)는 시니어에 국한되지 않는 죽음교육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사례 발표를 맡은 금위연 전도사는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나로부터 시작되는 삶의 재건'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4주 커리큘럼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신앙 그래프 그리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및 유언장 작성, 데스 클리닝(Death Cleaning)을 통한 삶의 의미 발견 등을 진행한다. 데스 클리닝이란 자신의 물건을 정리해 타인에게 새로운 가치와 축복으로 전달하는 행위로, 수료 후에는 참가자들이 음식을 나누는 공동체 식탁으로 마무리한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뚜렷했다. "노후를 불안해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준비하게 됐다", "조금 빨리 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든다", "유언장을 쓰는 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이 나왔다. 

금위연 전도사는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핵심 변화는 인식의 전환이었다고 전했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남은 생을 더욱 가치 있게 갈무리하기 위한 의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경험한 참가자들이 주변 지인들에게 교육을 추천하고 싶다는 반응도 높아 확산 가능성도 주목됐다.

 

30년이 넘는 주님의교회 호스피스 사역을 소개한 배윤환 목사  ©각당복지재단

30년 호스피스, 봉사자의 의연한 죽음준비가 가장 큰 죽음교육

서울 송파구 주님의교회(김화수 목사)의 30년 호스피스 사역 발표도 이어졌다.

주님의교회에서 1993년 창설된 호스피스부는 이듬해인 1994년 각당복지재단에 교육을 위탁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현재까지 양성한 봉사자가 700명 이상으로, 현재 주일 출석 인원이 3500명 규모임을 감안하면 전체 성도의 20% 이상이 호스피스 교육을 수료한 셈이다.

현재 주님의교회 호스피스부는 33개 병원과 6개 장애인시설·복지기관에서 활동하며 5개 호스피스 시설을 재정 지원하고 있다. 봉사자들은 매주 7개 호스피스 기관을 방문해 환자들의 발마사지, 이미용 봉사, 음식 섬김, 암 환우를 위한 털모자 뜨기 등을 진행한다. 담당 사역자인 배윤환 목사는 호스피스부 카카오톡 방에 상시 대기 중인 봉사 인원만 120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배 목사는 호스피스 사역의 특징으로 '눈에 띄지 않는 봉사'를 꼽았다. 교회 밖 현장에서 이뤄지는 봉사이기 때문에 직분 취득이나 교인들의 칭찬과 무관하게 순수한 동기로 헌신하는 봉사자들이 사역을 이끈다는 것이다.

배 목사는 호스피스부가 교회 전체에 미친 영향을 전하며 특별한 사례를 소개했다.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전 부장 권사와 봉사 현장에서 헌신하다 이른 나이에 소천한 집사, 두 사람이 죽음 앞에서 보여준 주변 정리 등 의연한 모습이 어떤 프로그램보다 강력한 죽음교육이 됐다는 것이다. 

배 목사는 "두 분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보여주신 모습이 많은 교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며 "저분들처럼 내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멋진 마무리를 보여주셨다"고 전했다.

 

'재단과 대학이 함께한 기독교 웰다잉 교육'을 주제로 발표한 오혜련 회장   ©각당복지재단

대학과 함께하는 기독교 죽음교육

오혜련 각당복지재단 회장은 '재단과 대학이 함께한 기독교 죽음교육'을 발표하며 재단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오 회장은 일반사회 죽음교육과 기독교 죽음교육의 차이를 명확히 했다. 일반 죽음교육이 삶의 의미 발견, 죽음 불안 완화, 애도 과정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면, 기독교 죽음교육은 여기에 더해 영원한 삶을 보는 시선의 회복, 고통의 의미 발견, 부활 신앙에 근거한 영원한 소망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고 전했다. 죽음의 정의 또한, 일반 관점에서 죽음이 '삶의 마침표'라면, 기독교 관점에서는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각당복지재단은 감리교신학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등과 협력해 신학대학 내 죽음교육 강의를 진행해왔다. 오 회장이 직접 참여한 신학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은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신학생에게 특히 필요한 교육"이라는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오 회장은 "교단별 신학적 특성과 목회 환경을 반영한 맞춤형 기독교 죽음교육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목회자 대상 보수교육 및 단기 세미나 운영, 연령대별 교회학교 연계 교육도 추진한다.

라제건 각당복지재단 이사장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교회 공동체에서 죽음교육은 신앙을 삶의 현실 속에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통로"라며 "기존의 노인복지관 중심 죽음교육을 넘어 대학과 교회를 중심으로 한 확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는 1991년 각당복지재단 설립자 김옥라 박사가 창립한 국내 최초의 죽음 관련 단체다. 창립 당시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첫 공개 세미나에 천 석 가까운 좌석이 가득 찼을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이후 35년간 죽음에 대한 성찰을 사회적 담론으로 공론화하며 죽음교육 확산의 중추적 역할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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