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림]
현재 안락사·존엄사·조력사망 등 관련 용어가 기관별로 혼용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현장의 목소리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발표자와 토론자의 표현을 원문 그대로 기록하되,
본지의 표기는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의 기술에 따라 '조력사망'으로 통일합니다.
(사)과학혁명과 인간존엄 연구학회는 지난 23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제3회 봄철 정기학술대회를 열었다. '과학혁명과 인간생명'을 주제로 한 이번 대회에서 제2부 세 번째 주제로 '존엄사 - 생애 말기 의료적 대안'이 다뤄졌다.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장이 발제를, 남유하 작가와 박혜영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조력존엄사, 생명권 확장 통한 제도적 대안 마련 필요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장은 "존엄사(조력존엄사·조력사망·조력자살)를 생애 말기 의료적 대안의 하나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발제했다. 최 회장은 생명권의 개념을 단순한 생물학적 생명 유지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자기결정권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가 '죽음에 임박한 상태에서 기계를 떼는 것'은 존엄한 죽음으로 인정하면서, '기계 없이 스스로 고통을 끝내는 과정에 조력하는 것'은 범죄로 취급하는 것은 평등 원칙과 과잉금지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다혜 회장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2020년 자살지원 금지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사례를 제시했다. 해당 판결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주요 사례로 꼽힌다.
또한 최 회장은 캐나다의 조력사망(MAID) 제도 운영 통계를 공개하며, 캐나다에서 2024년 조력사망을 선택한 사람은 1만6,499명으로 전년 대비 6.9% 증가했고, 전체 사망자의 5.1%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이 중 조력사망자의 74.1%가 완화 치료를 받았으며, 49.9%는 한 달 이상 지속적인 완화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 회장은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조력사망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보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현황도 함께 제시됐다. 전직 공무원 이명식 씨(63)는 원인 불명의 척수염으로 5년째 하반신 마비와 극심한 환상통에 시달리다 2024년 12월 조력존엄사 미입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1월 이를 심판회부했다. 2017년과 2018년에 각하됐던 유사 청구와 달라진 흐름이다.
수천만 원 비용 부담에 원정 조력사망 양극화… 국내 입법 필요성 제기
토론자로 나선 남유하 작가는 2023년 말기암 환자였던 모친 조순복 씨의 스위스 조력사망에 동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입법의 필요성을 풀어냈다.
스위스만이 외국인의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현실에서 한국 환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구체적이다. 스위스의 조력사망 지원 단체인 디그니타스(Dignitas) 이용 비용만 한화 약 2,000만 원 수준이고, 항공·숙박·동행자 비용까지 더하면 수천만 원이 든다. 남 작가는 "경제적 여유가 없는 환자는 선택조차 불가능한 구조가 현실적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체력의 역설도 짚었다. 스위스까지 장거리 비행을 버텨야 하므로 환자는 '아직 버틸 수 있을 때' 떠나야 하고, 이 때문에 더 살 수 있는 시간을 제도적 공백이 빼앗는다는 것이다.
남 작가는 제도화가 오히려 삶의 의지를 강화한다는 통계도 제시했다. 디그니타스에서 조력사망 최종승인을 뜻하는 '그린라이트'를 받고도 실제 존엄사를 택하는 경우는 30%이고, 나머지 70%는 선택지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남은 삶을 더 긍정적으로 영위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타살 우려에 대해서는 "조력존엄사는 기준에 부합하는 환자만 가능하며, 제3자의 개입 없는 온전한 자기결정임을 엄격히 검증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생명권 확장 해석에 따른 의료 현장 혼란 우려… 국가의 돌봄 체계 정비 선행되어야
박혜영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은 "의료조력사는 찬반 이분법이 아닌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국가의 제도적 정비 선행을 강조했다. 박 사무관은 보건복지부와 법무부의 답변을 인용해 "환자의 의사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조와 완화의료 시스템 등 대안적 돌봄 제도의 정비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질문했다.
또한 "생명권을 확장 해석할 경우 의식불명 환자에 대한 의료 현장의 판단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하며, "의사의 입장에서 치료 중단과 직접 조력을 동일하게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제언했다. 결론적으로 "개인의 선택이 사회적 방치의 결과가 되지 않도록 사회적 연대와 보호 책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종합 토론에서는 개념과 용어의 엄밀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지용 연세대학교 교수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일반적 인격권에 근거해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자살관여죄에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을 언급하며, "일반인의 입장에서 '자기결정권'이 결국 자살할 권리가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박 교수는 또 "존엄사, 적극적 안락사, 연명치료 중단, 의사조력자살, 조력사망 등의 용어를 법적으로 엄격하게 구분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논의의 편의상 섞어서 쓰는 경우가 학계와 언론에서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스위스는 의사조력자살만 인정하고 적극적 안락사는 인정하지 않는다"며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이 규범적으로 차이가 있는지, 동일하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