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복지부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온라인으로도 등록할 수 있도록 절차를 정비하고, 연명의료 중단·유보가 가능한 시점을 기존 '임종기'에서 '말기'로 확대하는 방안 등을 추진한다. 환자·시민단체 4곳은 자기결정권 확대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말기 판단 기준의 정교화와 비대면 등록 안전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며 보완책을 촉구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일 이형훈 제2차관 주재로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를 열어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24~2028)'의 2026년 시행계획을 심의·확정했다.
핵심 변화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방식이 바뀐다. 현재는 19세 이상 성인이 등록기관에 직접 방문해 대면으로만 작성할 수 있으나, 앞으로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으로 작성·등록할 수 있도록 절차가 마련되고 법령이 정비된다.
다른 하나는 연명의료 중단·유보 가능 시점의 확대다. 현행법은 이를 '임종기'에 한정하고 있으나, 정부는 이를 '말기'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등과의 논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임종기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급속한 증상 악화로 사망이 수일 내에 임박한 상태를, 말기는 적극적 치료에도 근원적 회복 가능성이 없고 수개월 이내 사망이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상태를 가리킨다. 환자와 의료진의 상담을 조기에 진행할 수 있도록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기도 '말기'에서 '말기가 예견되는 시점'으로 개정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종합병원·요양병원을 중심으로 한 윤리위원회 및 공용윤리위원회 설치 확대, 법정서식의 전자문서 변환을 위한 서식관리시스템 구축, 의료기관·등록기관 종사자 교육 확대도 함께 추진된다.
이형훈 차관은 "생애 말기의 문제는 나와 내 가족,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라며 "국민이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제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5일에는 제7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민간위원 워크숍이 별도로 열려 임종기에서 말기로의 확대 논의가 본격화됐다. 위원장은 김옥주 서울대 의대 인문의학교실 교수가 맡았으며, 민간위원 13명과 정부위원 6명으로 구성됐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대통령 소속으로,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와는 별도의 기구다.
환자·시민단체 4곳 "취지 공감하나 안전장치 부족"
한국중증질환연합회와 건강세상네트워크,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등 환자·시민단체 4곳은 11일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정부 개정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고통받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인간다운 존엄한 마무리를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취지, 즉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큰 틀의 방향성에는 깊이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이번 개정안이 의료 현장에 법적·의료적 혼선과 잠재적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제도 시행 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단체들이 제시한 보완 과제는 네 가지다.
첫째는 말기 환자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의학적 판단 기준 확립이다. 이들 단체는 "기존 '임종기'가 수일 내 사망 가능성이 높은 상태인 것과 달리, '말기'는 수개월 이상 연명이 예상되는 상태로 예측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의사나 의료기관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다"며 "의료진과 가족 간 갈등이 발생하거나 치료 가능한 환자가 조기에 치료를 포기하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질환별로 정교하고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이 명확히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온라인 등록에 따른 안전장치 마련이다. 이들 단체는 "온라인 등록 도입이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연명의료 중단은 생명과 직결된 엄중한 결정"이라며 "비대면 등록 과정에서 환자가 제도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주변의 강요나 심리적 위축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작성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짚었다. 구체적으로는 전문 상담원과의 화상 상담 의무화와 단계별 필수 교육 영상 시청, 철회 절차 도입 등을 제안했다.
셋째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 확충의 선행이다. 이들 단체는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한 말기 환자들이 고통 없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완화치료와 돌봄 서비스가 필수적"이라며 "현재도 부족한 호스피스 병상과 전문 인력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제도적 기준만 낮추는 것은 환자들을 사각지대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제도 확대에 걸맞은 돌봄 인프라 예산 증액을 정부에 요구한다는 입장이다.
넷째는 의료자원 배분에서의 차별 가능성 차단이다. 이들 단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명목하에 연명의료 결정 기준이 확대되지만, 자칫 의료 현장에서 이를 악용해 더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들의 치료 기회가 박탈당하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코로나19 시기 병상 부족 사태 속에서 중증 환자들이 겪었던 비극적인 경험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며 "이번 법 개정으로 경제적 취약계층의 비자발적 치료 포기 위험을 방지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받을 권리가 위협당하지 않도록 다중의 안전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생명이 경제적 논리나 현장의 편의성 때문에 조기에 포기되는 일이 없도록 법적·제도적 방비책을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며 "정부는 이번 입법예고 기간 동안 환자단체와 시민단체, 의료계의 현장 목소리를 적극 수렴해 법이 가지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확대 취지가 왜곡 없이 구현되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는 의견 수렴 단계를 거쳐 후속 절차에 들어간다. 정부와 시민사회 양측이 자기결정권 확대라는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시행 속도와 안전장치를 둘러싸고 시각차를 드러낸 만큼, 의견 수렴 과정에서 어떤 절충점이 도출되는지에 따라 제도의 구체적 윤곽이 갈릴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