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조력사망 단체 ‘페가소스(Pegasos)’가 의학적 정당성이 불분명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조력사망 서비스를 제공하여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영국인 교사 앨리스터 해밀턴(47) 씨가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해당 협회를 통해 생을 마감한 사실이 알려지며, 조력사망 제도의 윤리적 허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영국인 화학 교사였던 앨리스터 해밀턴은 가족들에게 파리 여행을 떠난다고 말한 뒤 실종됐다. 연락이 두절되자 실종 신고를 한 그의 어머니 주디스 해밀턴은 은행 기록을 통해 아들이 페가소스에 1만 2,000스위스프랑(약 2,200만원)을 지불한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 매체 피플닷컴에 따르면 가족 측은 페가소스에 수차례 이메일을 보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고, 경찰과 영국 대사관이 개입한 후에야 사망 사실과 유해 우송 계획을 통보받았다. 유가족에 따르면 앨리스터는 신청서에 통증, 피로, 불편함을 호소했으나 "명확한 의학적 진단은 없다"고 명시했으며, 가족에게 통보하지 않았음을 밝혔음에도 페가소스 측은 신청을 승인했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조력사망을 합법화했으며, 이는 의사가 약물을 직접 투여하는 불법 안락사(스위스 형법 114조)와 달리 당사자가 직접 약물을 복용하는 방식이다. 스위스 형법 115조는 '이기적 동기'가 없는 타인의 자살 조력을 처벌하지 않는다.
2019년 설립된 페가소스는 타 단체들이 요구하는 ‘말기 질환’ 조건과 달리, 만 18세 이상의 판단 능력이 온전한 성인이라면 건강 상태와 무관하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개방적인 기준으로 유사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웨일즈 출신의 앤 캐닝(51)은 특별한 질병이 없었으나 아들의 죽음을 비관해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페가소스를 찾아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언니 델리아는 페가소스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아일랜드의 모린 슬로(58) 또한 홀로 페가소스로 향했고, 딸 메건은 며칠 뒤 문자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통보받았다.
앨리스터의 어머니 주디스 해밀턴은 "조력사망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으나 엄격한 법적 절차 속에서만 진행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페가소스 측은 "스위스 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전문의 보고서 확인 및 반복 상담, 시술 전 재면담을 거쳤다"고 해명했다. 또한 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가족에게 알리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내부 절차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선택을 넘어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는 절차의 타당성이다.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나 동의 과정 없이, 개인과 단체 간의 계약만으로 죽음을 이행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비판이다.
의학적 정당성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명확한 말기 진단이나 의학적 소견 없이 진행되는 조력사망을 정당한 '의료 행위'의 범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아울러 제도적 감시의 부재도 문제로 지적했다. 민간 단체의 자율성에만 기댄 현 시스템은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마저 불분명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