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18년 2월, 한국 사회의 죽음 문화를 뒤흔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앞두고, 제도의 심장부 역할을 할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역할 주체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상희 의원은 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고,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제도적 정착을 위한 관리기관의 역할과 과제를 집중 조명했다.
◆ 의사 독단에서 '환자 자기결정권'으로... 제도 안착의 열쇠
김상희 의원은 이번 법 시행의 본질이 '결정권'의 이동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그동안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의사가 배제된 채 의료진과 가족의 합의만으로 연명의료 중단이 결정되는 관행이 있었다.
김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이 법이 시행되면 그동안 환자의 의사는 배제된 채 의사가 가족과 상의해 단독으로 결정해 왔던 연명의료 중단을 할 수 없게 된다"며 "이해관계로 좌지우지되지 않는 독립적인 운영 방안이 확보되어야만, 의료인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의 올바른 연명의료가 정착할 수 있다"고 관리기관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 현장의 목소리 ... "의료기술과 윤리의 간극 메울 전문성 시급"
발제에 나선 의료 전문가들은 법 시행 후 현장에서 발생할 혼란을 우려하며, 관리기관이 단순 행정기구가 아닌 '윤리적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한국 의료의 현실을 진단했다. 그는 "의학수준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으나 의료 문화나 윤리의 수준은 미처 따라오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관리기관이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으로 '전문성'을 꼽았다.
고 교수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의료인들조차 생소한 '연명의료계획서' 및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자료를 수집·관리해야 한다"며, 특히 "의료현장에서의 어려움은 의료인의 도덕적 숙고를 도울 수 있는 의료윤리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고 교수는 응급 상황이 빈번한 의료 현실을 감안해 "신속 정확하게 보관하고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공이나 연관 자문에 응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신속한 대응 체계와 중립성을 주문했다.
◆ 병원 내 설치 vs 완전 독립 기구 ··· "기존 인프라 활용해야" vs "규제기관 전락 우려"
이날 토론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관리기관의 '운영 주체' 문제였다. 핵심은 '의료기관(병원)이 관리기관을 맡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시각차였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 단장은 "우리처럼 제한적으로 연명의료를 결정하게 하면서, 연명의료관리기관을 별도로 운영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해외 사례를 들었다. 그는 "호스피스완화의료 관리기관과 연계해서 운영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며 "연명의료관리기관만 별도로 존재하면 진료현장에 부담을 주는 규제기관이 될 위험이 높다"고 우려했다. 또한 보건산업진흥원처럼 별도 예산 배분 없이도 전문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시민단체와 윤리 정책 전문가들은 '이해충돌' 가능성을 제기하며 의료기관 배제 원칙을 고수했다.
김소윤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사무총장은 특정 병원이 주도권을 쥐는 것에 대해 "대형 병원에서 맡을 경우 의료인 중심으로 치중될 가능성이 있다"며 "조직 전체의 관심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결정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으로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은 조직규모가 작고 전문성이 높아 의사결정과정이 신속하며 정부 산하 연구기관으로서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거론했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사무총장 역시 "조사를 하는 기관과 조사를 받는 기관이 모두 같은 곳이 되면 이해관계 당사자끼리의 업무가 되어 공정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으며,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장은 100% 그 의료기관의 '의사'가 될 것"이라며 폐쇄적인 운영을 우려했다.
김 사무총장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연간 약 3만여 명의 연명의료중단결정을 관리하는 중대한 사안에 대하여 독립된 기관을 설립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독립 기구 설립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라정란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장 또한 동조하며 "이 법에 의한 연명의료결정과 이행은 의료기관에서 이루어지기에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은 의료기관과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기관이어야 한다"고 전했다.
라 회장은 나아가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는 가족중심 의사결정 등으로 환자 자신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관리기관이 단순 관리를 넘어 제도화와 관행 성숙을 위한 모니터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연결과 소통 그리고 사회적 합의의 플랫폼
기관의 독립성만큼이나 '유기적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관리기관이 고립된 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서 교수는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의 정책결정 기능과 유기적 관계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책 기구와의 연계를 강조했다. 동시에 등록기관(보건소, 비영리단체 등)과의 협력을 언급하며 "등록, 변경, 철회 등이 행해지는 현장 실태를 잘 파악하는 윤리적, 사회적 전문 식견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단순히 의료 정보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좋은 죽음관'을 이해하는 사회적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황의수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연명의료 중단이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제도화돼 시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걸음씩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논의 내용을 수렴하여 기관 역할을 정의하게 될 것"이라며, 하위 법령 제정 과정에서 전문성과 인적 규모에 대한 고민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2월, 법 시행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한 전문가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단순한 '서류 보관소'가 될지, 아니면 한국 사회의 죽음의 질을 높이는 '생명 윤리의 컨트롤타워'가 될지는 결국 '독립성'과 '전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느냐에 달렸다고 의견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