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이하 WHO)가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을 인류의 생명과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심각한 공중 보건 위기로 규정했다. WHO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사회적 단절이 유발하는 사회·경제적 비용 지출의 심각성을 경고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 설계와 사회적 연결 강화를 촉구했다.
이에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은 지난달 23일 WHO가 펴낸 보고서 ‘외로움에서 사회적 연결로’를 심층 분석, 국내 실정에 맞는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해 발표했다.
◇ 청소년과 저소득 국가의 외로움에 대한 취약성
WHO는 전 세계 153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기반으로 사회적 단절의 규모를 측정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세계인의 약 1/6(15.8%)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외로움은 '개인이 원하는 사회적 관계와 실제 관계 사이의 괴리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주관적 감정'을 의미한다.
특히 연령대별로는 청소년의 외로움 비율이 20.9%로 가장 높았다. 보고서는 "청소년기는 신체적·정신적 변화가 급격한 성장기이므로 희망하는 연결 수준과 현실 간의 차이가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가 간 비교에서는 저소득 국가의 외로움 정도가 24.3%로 가장 높게 나타나, 빈곤이 사회적 관계 형성에 공통적인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음이 증명됐다.
반면 사회적 고립(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객관적으로 부족한 상태)의 경우 노인의 25~33.6%, 청소년(11~19세)의 27%가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애인, 이주자 및 난민 등 특정 그룹의 단절 비율은 일반 집단보다 더 높게 형성됐다.
◇ 신체·정신 건강의 악화와 막대한 경제적 손실
WHO는 사회적 단절을 단순한 감정적 문제를 넘어 '치명적인 건강 위협'으로 간주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87만 명 이상의 사망이 외로움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신체적으로는 심장병, 뇌졸중, 고혈압, 당뇨와의 연관성이 확인되었으며, 정신적으로는 우울, 불안, 자살, 자해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 치매 및 알츠하이머 등 뇌 인지 건강 악화와 밀접한 관계를 보였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손실도 심각하다. 사회적 단절은 조기 사망으로 인한 노동력 저하와 낮은 생산성을 초래하며, 이는 막대한 보건 비용 지출로 이어진다. 보고서는 "건강한 사회적 관계 형성은 개인의 안녕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 글로벌 대응 전략. 캠페인부터 사회적 처방까지
WHO는 외로움 감소를 위한 5가지 핵심 전략 △정책 △연구 △개입 △측정 △참여를 제시하며 각국 정부의 개입을 권고했다.
영국의 'End Loneliness' 캠페인이나 호주의 'Neighbour Day'는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고 지지층을 형성한 성공 사례로 꼽혔다. 또한 지역사회 전략으로 커뮤니티 센터, 공원, 도서관 등 사회 기반 시설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이 제시됐다. 특히 의료진이나 사회복지사가 약물 처방 대신 지역사회 활동 참여를 권유하는 '사회적 처방' 방식이 효과적인 개입 모델로 언급됐다.
디지털 기술의 경우 장단점이 공존한다. 챗봇이나 AI, 온라인 사회망은 이동이 어려운 노인이나 장애인에게 효율적인 도구가 될 수 있으나, 저소득층의 접근성 한계와 대면 관계 감소에 대한 우려는 여전한 과제로 남았다.
◇ 한국의 현실은 WHO 통계와 반대되는 연령별 경향
한국 사회의 외로움 양상은 WHO의 글로벌 추세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2024년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약 21%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며, WHO 보고서와 달리 '연령대가 높을수록' 외로움이 심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경제적·정정서적 지지체계가 전혀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가구 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외로움이 높아지는 경향은 WHO가 추정한 사회적 단절 요인과 일치했다.
현재 한국은 2020년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2023년 제1차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대응에 나선 상태다. 이는 외로움 자체를 정책화한 유럽·북미와 달리 '고독사'라는 극단적 결과 방지에 초점을 맞춘 한국만의 특징적인 접근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정부는 2027년까지 고독사 수를 20%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 제공되는 데이터들이 고소득 국가에 편향되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단절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한국 역시 기존의 고독사 중심 대책에서 나아가 전방위적인 사회적 고립 예방 체계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외로움은 단기간에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영국의 외로움 인식 주간 사례처럼 명확한 메시지를 담은 홍보 활동과 사회적 주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주문했다.
또한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등 관련 기관 간의 협업을 통해 한국인의 임종 경로와 질병 궤적을 반영한 정책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