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조력사망(조력자살, 조력존엄사)의 법적 정당성을 인정하는 입법적·사법적 판단이 확대됨에 따라, 사망위험을 보장하는 보험산업의 대응 과제가 부각되고 있다. 특히 조력사망을 ‘자살’로 볼 것인지, 혹은 기저질환에 의한 ‘자연사’로 볼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생명보험금 지급 논의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보험연구원 송윤아 연구위원과 김석영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조력사망 제도화의 국제적 동향과 그에 따른 보험 실무상의 변화를 분석했다.
◇ 국제사회, 조력사망을 ‘기저질환에 의한 자연사’로 규정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미국 오리건주를 시작으로 캐나다, 벨기에, 포르투갈 등이 조력사망을 합법화했으며, 2025년 현재 영국과 프랑스도 관련 법안이 하원을 통과해 상원 심의를 진행 중이다.
조력사망 합법화 국가들은 보험금 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통적인 방식을 택했다. 보고서는 "스위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력사망 합법화 국가에서는 사망진단서상 사인을 기저질환으로 기재하고 사망 유형을 '자연사'로 분류함으로써 법적 혼선을 예방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 오리건주는 법률에 조력사망이 보험계약에 불리한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하여 자살면책조항 적용을 원천 차단했다. 캐나다 역시 형법상 절차를 준수한 조력사망을 자연사로 의제하여 통상 2년으로 설정된 자살면책기간의 적용 없이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 보험사의 리스크 관리, 정보 비대칭 해소와 고지의무
조력사망이 자연사로 의제되어 자살면책권이 상실될 경우,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역선택과 고지의무 위반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곧, 여러 개의 사망 보험에 가입 후 의사의 도움으로 생을 마감해도 자살로 인한 거절할 명분이 없어진다는 것. 이에 대해 보고서는 해외 주요국의 제도적 보완책을 제시하며 "캐나다의 경우 정부 차원의 강력한 보고체계를 통해 보험사의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 의료진은 환자가 조력사망을 요청한 날짜와 질병 지속 기간 등을 보건부에 상세히 보고해야 하며, 보험사는 가입자의 동의하에 이 보고서를 조회하여 보험 가입 시점의 고지 내용과 실제 질병 발생 시점 사이의 불일치를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역시 입법 과정에서 보험사에 '계약체결의 자유'와 '고지의무 위반에 대한 방어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험사가 계약 시점에 피보험자의 중증 질환 진단 사실이나 조력사망 신청 여부를 질의할 수 있게 하고, 의도적인 허위 고지가 발견될 경우 계약 무효를 주장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취지다.
스위스는 조력사망을 비범죄화된 자살로 분류하기 때문에, 일반 자살과 동일한 면책기간을 적용하여 일반적인 자살면책기간 2년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 한국 사회의 인식 변화와 보험산업의 과제
국내에서도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죽음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25년 12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수는 약 320만 명을 상회하며, 조력사망 찬성 여론은 76.3%에 달한다.
보고서는 향후 국내 입법 논의와 관련하여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조력존엄사 법안은 조력사망을 이유로 보험 등에서 불이익이 발생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한 "조력사망을 기저질환에 의한 자연사로 간주할 경우, 생명보험뿐만 아니라 피보험자의 고의 사고를 원천 면책 사유로 하는 손해보험의 질병보험(암보험 등) 보장 범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조력사망 합법화가 사망 위험을 담보하는 보험산업의 근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보험업계가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입법 동향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역선택 차단을 위한 제도적 보완책 마련에 동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