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부음이 친구들에게 전해지며 시작됩니다.
승진가도를 달리며 부와 명예를 누렸고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이반 일리치지만 사람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동상이몽에 빠집니다. 직장 내 그의 공석으로 인해 발생할 인사이동, 그로인해 발생할 경제적 이익 등에 대한 생각이 고인의 빈자리를 채웁니다.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그의 친한 친구마저도 모두 사회적 예의에 따라 행동하고 있을 뿐 고인을 위한 진정한 애도나 추모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죽음이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이 아님에 안도를 느낄 뿐입니다.
‘사흘 밤낮을 끔찍하게 괴로워하다 죽었다. 언제든지, 지금 당장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서늘한 두려움에 순간 몸서리쳤다. 하지만 곧바로 그에게는 자신도 모르게 그건 이반 일리치의 일이지 자신의 일은 아니다. 자신에겐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반 일리치의 아내 역시 남편의 죽음 앞에 슬픔보다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국고지원금에 그녀의 관심이 쏠려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어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에게 하고싶었던 말을 꺼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 국고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심지어 그도 잘 모르는 것까지 훤히 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이렇게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 국고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녀는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뜯어낼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앞에 펼쳐지는 냉소적인 조롱과 풍자의 묘사는 사실 죽은 이반 일리치를 향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반 일리치야말로 자신의 삶을 오로지 세속적 야망을 위해 불태웠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더 나은 직장, 더 많은 보수, 더 높은 사회적 위치와 명예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에게 가족, 친구, 동료는 성공한 삶을 위한 장식품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성공가도를 달리던 이반 일리치 앞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집니다. 더 나은 보수를 제공하는 임지로 발령받은 그는 큰 꿈에 부풀어 새 집을 장만하고, 집을 장식하는데 온 신경을 곤두 세웁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맘에 들게 일하지 않는 도배공에게 시범을 보여주겠노라며 이반 일리치는 몸소 사다리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만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고 창틀에 튀어나온 손잡이에 옆구리를 부딪히고 맙니다.
옆구리의 통증은 금세 가시는 듯 보였으나 그로부터 시작된 원인모를 질병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의 야망과 성공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어떻게 삶의 마지막이 찾아오게 된걸까요. 이반 일리치는 자신 앞에 닥친 죽음이 믿기지 않았고, 인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시신 앞에 보였던 반응처럼 말이죠.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 따르면 사람은 죽음 앞에 5단계의 반응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1단계 부정과 고립, 2단계 분노, 3단계 타협, 4단계 우울, 5단계 순응인데요. 이반 일리치가 자신의 죽음의 징후 앞에 보인 반응 역시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는 형태로 먼저 나타납니다. 성공을 향한 그의 야망이 컸던 탓일까요. 죽음 앞에 내던져진 그의 모습은 더욱 초라해 보이기만 합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그러하듯 준비되지 못한 죽음은 크나큰 고통과 후회를 남깁니다. 죽음을 타인의 일로, 먼 미래의 일로 여기는한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준비되지 못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구약 성경의 전도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도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지혜로운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죽음을 마음에 두라고 조언합니다. 죽음을 남의 일로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죽음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 또는 먼 미래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모두 앞에 죽음이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옛말처럼 오는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데는 순서가 없으니까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역시 소설 속 주인공의 죽음이지만 동시에 나의 죽음, 당신의 죽음, 우리 모두의 죽음이기도 합니다. 나는 생의 끝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요. 내 삶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요. 죽음은 내 삶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을까요. 이제 우리 각자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진정 의미있는 삶은 죽음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웰다잉뉴스 송요한 ed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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