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지난 28일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가톨릭 생명윤리 연구소, 국민의힘 한지아 국회의원과 공동으로 '돌봄의 사회: 생애 말기 돌봄의 활성화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조력존엄사법안과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연명의료 중단 이행 시기 말기 확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생명 존중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돌봄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지아 국회의원(국민의힘)은 개회사를 통해 생애 말기 돌봄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대 과제임을 강조했다. 한 의원은 "암 환자, 1인 가구, 치매 환자 등 각자가 처한 다양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돌봄이 필요하다"며 "사람의 생명과 죽음을 다루는 법과 제도를 논의할 때는 매우 신중한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세계 최초로 조력사를 법제화한 미국 오레곤주의 경우 실제 조력사로 사망한 이들은 1% 미만이며, 99%의 환자들은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돌봄의 활성화'를 통해 국민의 생애 말기를 지켜내야 할지 시사한다"며 "오늘 토론회가 환우와 의료진, 정책 관계자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구요비 욥 주교는 축사에서 안락사 도입 움직임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구 주교는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는 환자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초래하는 안락사를 법제화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안락사 찬성 이유 1위가 '남은 삶의 무의미함'이라는 설문 결과는 고통받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인식을 보여준다"며 "인간의 존엄은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 변하지 않으며, 생명의 가치를 '삶의 질'에 따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구 주교는 "자기결정권도 생명권보다 앞설 수 없으며 우리 사회는 결코 '죽음'을 권리로 인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 "고통받는 환자의 자살을 돕는 것은 그릇된 자비이자 위험한 왜곡"이라며 "참된 사랑과 자비는 환자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하며 경청하고 돌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1인 가구가 25%에 달하는 현실에서 효율성만 강조하면 환자들은 죽음으로 내몰릴 것"이라며 돌봄이 우리 사회의 인간성을 가늠하는 척도임을 상기시켰다.
■ 윤형규 교수 "연명의료 중단 '말기' 확대는 위험… 회복 기회 박탈"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윤형규 여의도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연명의료결정 이행시기 말기 확대의 문제점'을 주제로 발표했다.
윤 교수가 말기 확대 개정안에 대해 지적한 문제점은 ‘말기 환자’를 의학적으로 정확히 진단할 일관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암과 달리 만성 호흡기 질환 등 비암성 질환은 임종기와 말기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윤 교수는 2018년 대한의학회 지침을 예로 들며 “매우 심한 만성호흡기질환이나 장기간 산소치료가 필요한 경우 등을 말기로 보지만, 이러한 기준에 해당하더라도 실제로는 수년 이상 생존하는 환자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암성 질환은 급성 악화기가 오더라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호전되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며 “진료 현장에서 ‘회복 불가능한 말기’를 단정 짓는 것은 매우 어렵고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윤 교수는 폐기능이 20% 미만인 상태로 15년째 치료 중인 환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전형적인 기준으로는 말기 환자로 분류될 수 있지만, 만약 폐렴 치료 등 적절한 조치를 중단했다면 이 환자는 10년 이상의 생명을 잃었을 것”이라며 “비암성 질환이 우리나라 사망 원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섣부른 말기 진단과 치료 중단은 매우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결론적으로 “연명의료 중단의 말기 확대는 의학적 판단에 따른 환자의 최선 이익이 아닌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하게 되어, 회복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에게서 회복의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으로 법적 시기 확대보다 ‘생애 말기 돌봄 체계’의 확립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호스피스 돌봄 시스템의 부족 해결 ▲암 중심의 병원 입원형 호스피스에서 비암성 질환을 포괄하는 지역·공동체 연계 ‘재가 호스피스’로의 전환 ▲사회 공동체의 돌봄 역할 강화 등을 제안했다.
■ 최윤선 교수 "완화의료, '임종 직전' 아닌 '진단 초기'부터 개입해야"
두 번째 발제자인 최윤선 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임종 돌봄의 필요성과 제언'을 발표하며 현행 호스피스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최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에도 의사조력자살 요구가 지속되는 것은 국민들이 병원에서의 임종 과정을 여전히 고통스럽고 비참하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2021년 기준 전체 사망자의 74.8%가 의료기관에서 임종하고 있으며, 암 사망자의 약 26%만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마저도 이용 기간은 평균 한 달 미만에 불과해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 교수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으로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연명의료결정법의 틀 안에 묶여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말기와 임종기는 칼로 무 자르듯 구분되지 않는다”며 “현재 구조는 완화의료를 연명의료 ‘중단 시점’에만 진입하게 만들어 조기 개입을 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가능하다면 호스피스와 연명의료를 법적으로 분리하고, 최소한 현행 법 체계 안에서도 완화의료로의 조기 진입이 가능하도록 운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명 중심이 아닌 환자의 증상과 미충족 요구를 중심으로 완화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최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에만 급급한 현재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사전연명의향서 중심의 접근은 위험할 수 있다”며 “환자와 오랜 기간 함께해온 주치의나 지역사회 의료진과 충분히 논의하고, 수시로 수정 가능한 ‘사전돌봄계획(Advance Care Planning, ACP)’을 일찍 시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모두를 위한 편안한 돌봄(Comfort care for All)’을 목표로 ▲임종 돌봄 대상 확대 ▲끊김 없는 돌봄 연계 시스템 구축 ▲수가 체계 보완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 이상범 원장 "병원 떠나 집으로… '재가 돌봄'이 해답"
마지막 발제자인 이상범 서울신내의원 원장은 '재가 돌봄과 재가 임종'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원장은 "현재 논의는 연명의료 중단 절차에만 매몰돼 있다"며 "병원은 쾌적하지만 환자를 고립시키는 공간이므로, 환자가 가장 편안한 집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재가 돌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가 돌봄이 단순한 장소의 변화를 넘어 ▲환자 중심성(심리적 안정) ▲통합적 돌봄(신체·심리·사회·영적 필요 충족) ▲가족 지지(슬픔과 부담 경감)라는 가치를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환자는 자신의 집에서 의료진과 가족의 돌봄을 받으며 존엄하고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하는 ‘재가 임종’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최근 발의된 의사조력자살 법안에 대해 현장의 우려를 전했다. 그는 “만약 의사조력자살이 합법화된다면 재택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이 이를 요구할 수 있는데, 과연 의사가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죽음을 앞둔 환자와 지친 가족에게 영양 공급 중단을 제안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임종기와 말기를 자의적으로 구분하는 모호성이 결국 ‘빨리 끝내자’는 식의 법안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논의의 초점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존엄하게 살아갈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가 돌봄의 정착을 위한 구체적인 과제도 제시됐다. 이 원장은 “현재 재택의료센터의 30% 이상이 한의원인데, 말기 환자 처치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전문 인력 양성과 실제 역량을 갖춘 센터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제도적 보완점으로 ▲방문진료 등 재택의료 수가의 현실화(가치 기반 지불제 도입 등) ▲병원과 지역사회를 잇는 원활한 전달체계 구축 ▲임종 환자 돌봄 의료진에 대한 법적 면책 장치 마련 등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이 원장은 “재가 돌봄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생의 말기’의 모습”이라며 “환자가 거대 병원이 아닌 자신의 공간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 의료계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 토론 "국가의 과도한 입법 개입 경계... 호스피스 등 인프라 확충 시급"
이어진 지정 토론에서는 김중곤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의견을 개진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장은 "항암제에는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지만 임종 돌봄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국가 재정 투입을 촉구했다.
이상원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는 "국가가 법으로 죽음의 시기를 강제하려는 입법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율리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원은 호스피스 병상 확충과 돌봄 인력 처우 개선을, 최민영 강남대 교수는 연명의료계획서 활성화와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소연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기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300만 명의 동의 문제 등 법 개정 시 발생할 절차적 난제를 검토하고 있다"며 "통합돌봄법 시행과 맞물려 제도 전반을 정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