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기 위한 ‘조력존엄사(의사조력사망)’ 법제화를 두고 환자 당사자의 자기결정권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의무가 맞섰다.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녹색정의당 정책위원회와 양경규 의원, 한국존엄사협회 주최로 ‘조력존엄사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헌법소원 청구인과 유가족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법조계·의료계·장애인 단체의 찬반 논쟁이 전개됐다.
◇ 환자·유가족 "스위스행은 잔혹한 희망… 한국에서 눈 감게 해달라"
찬성 측은 극한의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현실을 호소하며 현행 제도의 한계를 성토했다.
헌법소원 청구인이자 환자인 이명식 씨는 “현대 의학으로 완화되지 않는 통증을 무조건 참으라는 반대는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살은 가족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고, 스위스행은 막대한 비용과 먼 거리의 부담이 있다”며 “흉물스러운 죽음이 아닌, 고향인 한국에서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려는 ‘목적’을 존중해 달라”고 촉구했다.
또한 “과거 조상들처럼 고통을 인내하라는 주장은 아플 때 병원을 찾는 현대인들의 행태와 모순되는 ‘내로남불’”이라고 꼬집었다.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 ‘디그니타스’ 회원의 딸 남유하 씨는 말기 유방암으로 고통을 겪었던 어머니의 사례를 증언했다. 남 씨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끝낼 방법이 죽음뿐인 환자에게 조력사망은 역설적인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픈 몸을 이끌고 13시간을 비행해야 하는 현실, 2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 언어 장벽 등은 환자에게 이중고”라며 “스위스행은 비행을 감당할 수 있을 때 떠나야 하므로 한국에 있을 때보다 수명이 석 달 이상 단축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인이 한국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존엄하게 마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는 우선 “‘조력존엄사’보다는 가치중립적인 ‘존엄사’라는 용어가 적합하다”며 용어의 정립을 주장했다.
이어 헌법 제10조를 들어 “존엄사는 개인에게 부여된 절대적인 기본권”이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입법 부재로 인해 환자가 위험한 자살을 시도하거나 해외로 떠나는 현실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지 않는다”며,'존엄사'의 전제로 “사회적 약자가 경제적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도록 국가의 보호 의무와 완화의료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정기 용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살 자체가 범죄가 아닌 제도에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생명 경시로만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해외 실증 자료에 따르면 조력사망 이용자는 취약계층보다 고학력자가 많다”며 돌봄 부담 때문에 이용한다는 주장을 반박하면서도, “단순한 찬반 논쟁을 넘어 법적 요건의 충분성과 제도 역효과에 대한 실증적 조사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장은 “2022년 협회 설립 이후 5개월 만에 250명의 회원이 가입할 정도로 국내 수요가 확인됐다”며 제도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 회장은 ▲연명의료중단 ▲의사조력사 ▲적극적 안락사 등의 용어를 구분하며, 협회의 목표는 ‘의료조력사’ 합법화와 생애말기 돌봄 복지 체계 구축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환자의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춘 공적 구조와 미성년자·정신질환자 보호 장치 마련을 선결 과제로 제시했다.
◇ "치료거부권도 없는 현실… 약자에게 '죽을 의무' 될 것"
반대 측은 조력존엄사가 사회적 약자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제도적 인프라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김정아 동아대 의대 교수는 "가장 취약한 이들의 생명권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며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조력사는 선택지가 아닌 의무사항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은 임종 과정이 아닌 환자의 치료거부권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불합리한 상황"이라며 "조력사 도입보다 시기 구분 없는 치료거부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효과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의료인에게 조력 의무를 지우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문희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인권위원장은 "장애를 가질 확률만으로도 낙태되는 현실에서, 조력사 도입은 '생산성' 논리에 의해 중증장애인의 생명을 제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죽고 싶다는 말은 사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절규"라며 "죽음을 선물하기보다 호스피스 확충 등 고질적인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김찬휘 녹색정의당 공동대표는 "노인빈곤율이 높은 한국에서 오남용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논의조차 터부시하는 것은 외면"이라며 "국민 82%가 찬성하는 만큼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경규 녹색정의당 의원은 조력존엄사를 ‘행복한 삶의 연장이자 사회가 보호해야 할 권리’로 규정했다. 양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방치된 관련 법안이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했음을 지적하며, 다가올 22대 총선에서 녹색정의당이 앞장서 조력존엄사 공론화를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