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4월 세계 과학계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중산(中山)대 연구진이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인간 배아 속 빈혈 유전자를 잘라 내 정상 유전자로 변환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국제 학술지를 통해 발표했기 때문이다.
세계 저명 과학자들은 ‘중국이 선을 넘었다’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체세포 편집은 환자 한 명에게만 영향을 주지만 중국이 시도한 배아 등 생식세포 교정은 미래 세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으로 비윤리적인 연구라는 것이다. 같은 해 12월 국제 과학자 그룹은 “인간 생식세포에 유전자 편집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며 “안전과 효능 문제가 해결되고 적절성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까지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명확한 선을 그었다.
그러나 2년도 안 돼 분위기가 반전됐다. 중국이 음성적으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개발하는 등 앞서 나가자 미국과 영국·일본 등 선진국들의 위기감이 커졌다. 그러면서 한두 곳씩 인간 배아 연구에 관한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2월, 마침내 미국 과학계가 인간 생식세포 유전자편집(Genome editing) 연구를 허용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15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국제 전문가 자문위원회는 유전자편집을 통해 수정란이나 생식세포(난자·정자)의 유전자 이상을 바로 잡아 질병이 자손에게 유전되는 것을 막는 치료를 허용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자문위는 미국 국립과학원(NAS)과 국립의학원(NAM)이 인간 유전자 편집 기술의 과학·윤리·제도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국제 전문가들로 2015년 구성한 것이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인간 생식세포 유전자 편집이 '심각한 질환과 장애'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아기에게 유전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합리적 대안이 없는 경우'에 필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아직은 실제 임신을 위한 것이 아닌 유전적 난치병 기초 연구를 위해 실험실에서 인간 배아 및 생식세포를 편집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등 '엄격한 조건과 감시'를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또 임상실험을 위해서는 수정할 유전자가 심각한 질병이나 상태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입증해야 하며, 위험 및 잠재적 혜택 가능성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전임상·임상 데이터를 제출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기는 했다. 동시에 지능·신체능력 향상 등 ‘인간 강화’를 위한 목적으로는 결코 유전자 편집 기술을 활용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못 박았다.
엄격한 조건과 감시를 전제로 달긴 했지만 인간 생식세포 유전자 편집을 지원할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파급 효과는 작지 않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임상시험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연방정부 자금 지원이 금지됐던 기술의 발전을 촉진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와 유전자 연구 윤리의 마지막 선을 넘었다는 우려가 함께 나오고 있다.
자문위는 앞서 2015년 12월 낸 보고서에선 "안전과 효능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또 더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유전질환 예방 등 치료 목적으로라도 인간 배아에 유전자 편집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결정은 ‘중국·영국 등과의 과학기술 경쟁에서 결코 뒤처지면 안 된다’는 미국의 다급한 심정을 엿볼 수 있다. NAS 측은 “과학적 진보는 인간 생식세포에서 유전자 편집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며 “미국이 기술의 발전을 엄격히 금지한다고 해도 어디선가 이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중국을 견제했다. 또 “이번 권고안은 대다수가 윤리적으로 불가침하다고 생각한 선을 넘어선다”고 인정하면서도 “유전자 편집 연구는 국제적 협업이 필요한 분야인 만큼 모든 국가의 잠재적 임상이 적절한 감시·규제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말해 중국에 대한 감시와 규제의 필요성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를 회의적으로 보는 과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아직 안전성과 효율성이 확립되지 않았으며, '유전질환 예방'과 '인간 강화' 라는 영역의 구분이 모호 한데다, 자문위 측이 과거 강조했던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대와 논의가 여전히 없는 상태라고 지적한다.
하버드대학 유전학자 조지 처치 교수는 "이 보고서엔 이런 '인간강화'와 관련한 구체적이고 분명한 금지 내용이 없다"면서 "만약 이 기술이 심각한 질환에 효과 있고 안전하다면 부수적으로 인간 강화 목적엔 왜 사용할 수 없는 일인지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유전학과 사회센터'의 마시 대보브스키 회장은 "유전자 편집 의료는 여유 있는 계층만 혜택을 볼 수 있어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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