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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가 아닌 살아생전에,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미리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따뜻하고 후회 없는 마지막이 될까요
”
배우 신애라가 90세를 맞은 아버지 신영교 씨와 함께 연 특별한 파티가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신애라이프'를 통해 공개된 이 행사의 이름은 '앤딩 파티(Anding Party)'. 통상적인 '끝 (Ending. 엔딩)'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삶과 사랑은 '계속된다 (Anding. 앤딩)'는 의미를 담은 생전(生前) 장례식이다.
주변의 어르신들은 '산 사람 장례를 치른다'며 꺼리기도 했지만, 신 씨의 생각은 명확했다. 죽은 뒤에 치르는 장례식은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는 자리일 뿐, 정작 당사자는 아무런 말도 전할 수 없다는 것.

배우 신애라는 이 파티의 기획 의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버지가 제안하신 파티는 사전 장례식과 같은 모임이었습니다. 죽은 후가 아닌, 살아생전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리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감사와 사과, 사랑을 전한다면 훨씬 더 따뜻하고 후회 없는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단순히 서구의 이색 문화를 흉내 낸 것이 아니다. 변함없이 곁에 있을 것 같았던 선배들의 부고를 접하며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직시하게 된 신애라와, 구십 평생을 정리하고 싶은 아버지의 뜻이 맞닿아 탄생한 자리였다.
이날 파티는 참석자들과의 식사와 교제를 시작으로 청란교회에서의 오르간 연주, 신영교 씨가 직접 작곡한 곡 ‘시소’가 흐르는 인생 회고 영상 상영, 딸 신애라 씨의 감사 편지 낭독, 신영교 씨의 축복 기도와 답사 등으로 따뜻한 작별과 축하의 시간을 완성했다.

◇ 21년의 고독, 그리고 아버지의 품격
신영교 씨의 삶은 '홀로 됨'의 연속이었다. 21년 전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그는 68세부터 지금까지 홀로 지냈다. 신애라는 아버지를 "믿음으로 꿋꿋하게 살아가시는 분"이라고 묘사했지만, 그 이면에는 짙은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외로움을 달래려 밤마다 드시던 약주는 2021년 사순절을 기점으로 완전히 끊었다.
"그 양반(하나님)은 날 사랑하셔. 나는 진짜 그 양반이 좋아. 내가 그 양반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너희를 위해 기도하잖아."
신 씨는 매일 헬스장에서 1시간 반씩 운동을 한다. 90세의 나이에도 운전을 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식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가겠지만, 너희가 힘들지 않게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최근 병원 검진에서 노환으로 인한 약간의 이상 징후가 발견되었을 때도, 그는 담담했다. 오히려 딸 신애라가 "이제 시작이구나,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갈 일이 시작됐구나"라며 허전함을 느꼈을 뿐, 신 씨는 여전히 씩씩하게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 부녀의 사이 녹여낸 편지
엔딩 파티는 화해와 고백의 장이기도 했다. 신애라는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별거와 재결합을 겪으며 아버지와 어색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전화도 자주 못 드리고 경제적 보살핌 외에는 도리를 못 하는 부족한 딸"이라는 부채감이 그녀를 눌러왔다.
그러나 파티 현장에서 낭독한 신애라의 편지는 그간의 어색함을 녹여내기에 충분했다.
"68세에 홀로 되어 살아오신 긴 시간 동안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지 잘 알면서도, 넋두리 한번 제대로 들어드리지 못한 한없이 부족한 딸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에도 늘 밝은 모습으로 곁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최근 어버이날, 신애라는 난생처음 아버지에게 팔짱을 꼈다. "아빠는 이런 게 어색하다"며 움찔하던 신 씨였지만, 그날 하루 종일 딸의 팔짱을 풀지 않았다. 어머니를 사랑했던 만큼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깨달았다는 신애라의 고백은, 엔딩 파티가 단순한 작별 의식을 넘어 가족 관계의 회복을 이끄는 치유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 '나눔의 유산' 실천한 아름다운 뒷모습
신영교 씨의 '앤딩'은 나눔으로 완성되었다. 그는 소형 아파트 한 채를 가정사역단체 하이패밀리에 기부했다.
이 기부금은 경기도 양평에 건립 중인 '기독교문화체험관(GMC)' 조성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자녀들에게 '물질적 유산'을 남기기보다 '나눔의 유산'을 남기고자 한 아버지의 뜻에 딸 신애라와 사위 차인표도 깊이 공감했다.

배우 신애라는 이번 경험을 통해 죽음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깊어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최근 가까운 선배들의 부고를 접하며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며 "장례식은 남은 가족을 위로하는 자리지만, 더 나아가 떠나는 본인이 살아생전에 작별 인사를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준비 없이 갑자기 떠나는 상황은 안타까울 것"이라며 "나도 75세나 그전이라도 예고할 수 있는 마지막 자리가 생긴다면 꼭 엔딩 파티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죽음이 단절이 아닌 '계속됨(Anding)'이라는 신영교 씨와 가족의 메시지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에 '어떻게 늙고, 어떻게 떠날 것인가'에 대한 묵직하고도 아름다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날 '앤딩 파티'는 죽음이라는 마침표를 따뜻한 쉼표로 바꾸며 장례 문화를 슬픔에서 축제로 승화시켰다. 그의 마지막 파티가 슬픔이 아닌 감동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