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존엄한 마무리를 돕기 위해 도입된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 중이나, 여전히 환자 본인의 의사보다 가족 등 대리인에 의한 결정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경우 가족이 결정했을 때보다 생애 말기 의료비 지출은 줄어들고 호스피스 이용률은 높아져, 임종기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1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명의료 중단 및 보류 의사결정 주체별 특성과 생애 말기 의료비 관계' 보고서를 발간했다. 연구팀은 2023년 65세 이상 사망자 중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을 이행한 3만 4,962명의 건강보험 청구자료를 분석했다.
◇ 여전한 '가족 결정' 의존도... 고소득층일수록 '사전 의향' 뚜렷
분석 결과,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환자 본인의 의사로 이행한 경우는 40.9%에 그쳤으며, 나머지 59.1%는 가족의 의사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집계됐다. 환자 의사로 결정된 사례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한 경우는 16.2%, 말기 또는 임종기에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한 경우는 24.7%였다.
의사결정 주체에 따른 인구학적 특성도 뚜렷하게 갈렸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환자군(환자 결정군)은 가족 결정군에 비해 고소득층과 대도시 및 중소도시 거주자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사회경제적 지위와 거주 지역이 제도의 접근성과 활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환자군은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낮고 중증 질환자 비율이 높았으며, 가족 결정군은 농어촌 거주 비율이 높았다.
◇ '자기 결정'이 바꾼 임종... 의료비 1,210만 원 vs 856만 원
의사결정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생애 말기 의료비와 의료 이용 행태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됐다. 사망 전 1개월 동안 환자 1인당 평균 의료비는 1,09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를 주체별로 세분화하면, 가족이 결정을 내린 경우 평균 의료비는 1,210만 7,000원으로 가장 높았다. 반면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의사를 밝힌 경우 856만 9,000원으로 가족 결정군보다 약 350만 원가량 낮았으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경우도 1,022만 7,000원으로 가족 결정군보다 낮았다.
특히 '연명 의료비' 항목만 놓고 볼 때, 환자 결정군(연명의료계획서)은 가족 결정군보다 30.1% 더 낮은 비용을 지출했다. 연구팀은 "다양한 변수를 통제한 분석에서도 환자 결정군이 가족 결정군보다 생애 말기 의료비가 4.2~5.1%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는 환자 본인의 결정이 불필요한 고강도 치료를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친 결과로 풀이된다.
◇ 호스피스 의료비, 환자 결정 시 최대 21.3%... 가족 결정은 3.5% 불과
호스피스 의료비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연명의료계획서' 환자군의 경우 호스피스 의료비는 21.3%에 달했으나, 가족이 결정한 경우 3.5%로 임종 직전까지 적극적인 처치가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환자군의 의료비도 11.5%로 가족 결정군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군(21.3%)의 호스피스 의료비 비중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군(11.5%)보다 2배 가까이 높은 현상은 작성 시점과 대상 환자의 특성 차이에서 기인한다.
보고서는 연명의료계획서가 주로 임종이 임박한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작성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행 호스피스 시스템이 말기 암 환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만큼, 의사의 권유가 실질적인 이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건강한 성인이나 비암성 만성질환자가 먼 미래를 대비해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 작성 당시에는 당장의 호스피스 입원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러한 격차의 주된 원인으로 분석됐다.
사망 전 1개월 동안 처방받은 연명의료 행위는 항암제 투여가 88.7%로 가장 많았으며, 혈압상승제(81.5%), 수혈(41.6%), 혈액투석(13.0%) 순이었다. 가족 결정군은 환자 결정군에 비해 중환자실 및 응급실 이용률이 높고 연명의료 행위 수행 비율도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 "자기결정권 보장이 임종 질 개선... 제도 보완 시급"
연구 보고서는 환자 자신의 의사가 반영된 결정이 생애 말기 치료 강도를 낮추고 호스피스 이용을 촉진하여 임종기 삶의 질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암 환자와 같이 임종 예측이 비교적 용이한 경우(연명의료계획서 작성군), 환자와 의료진 간의 충분한 숙고를 통해 의사결정이 명확히 반영되면서 의료비 감소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났다.
보고서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환자의 의사를 미리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실제 활용률은 아직 낮은 편"이라며 "일본의 '인생 회의' 사례처럼 반복적인 토론과 공유를 통해 제도의 실질적 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환자를 위한 대리 결정 주체의 법적·제도적 정비와 함께, 소득이나 지역에 따른 제도 이용의 차별이 없도록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