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림]
현재 국내에서 안락사·조력존엄사·조력사망·조력자살 등 관련 용어가 기관별로 혼용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현장의 목소리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원문 그대로 기록하되,
본지의 표기는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의 기술에 따라 '조력사망'으로 통일합니다.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말기 환자의 조력사망 합법화 법안이 지난 4월 24일(현지시각) 상원 심의 시간 만료로 최종 폐기됐다. 해당 법안은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에서 1,200건 이상의 수정안이 제출되면서 전체 59개 조항 중 7개 조항만 심의를 마친 채 회기가 종료됐다.
해당 법안은 2024년 10월 킴 리드비터 하원의원이 제출한 것으로, 2025년 6월 하원에서 찬성 314표, 반대 291표로 최종 표결을 통과했다.
이후 위원회 심의 단계에 들어섰으나, 방대한 양의 수정안 제출로 인해 절차적 지연이 발생했다. 법안 지지자들은 오는 5월 13일 개원하는 새 회기에 법안을 재발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폐기 전 법안의 주요 내용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말기 성인 중 여명이 6개월 이하이며 정신적 판단력을 보유한 자를 적용 대상으로 삼았다.
안전장치로 의사 2인의 확인과 법조인·정신과 의사·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다학제 패널의 심의를 거치도록 설계됐다. 조력사망 방식은 환자가 스스로 약을 투여하는 방식이며, 의사의 직접 시술은 금지했다.
법안 폐기를 두고 의회 내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일었다. 상원 법안 후원자인 찰리 팔코너 경은 "상원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 절차의 절대적인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조력사망 지지 단체인 'Dignity in Dying'은 이번 사태를 패배가 아닌 지연으로 규정하고, 5월 개원 이후 재상정이나 의회법을 활용해 상원 거부권을 우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반면, 법안에 반대하는 측은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정당한 심의가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상원 심의 과정에서는 강압으로부터의 보호 불충분, 국민보건서비스 예산 압박, 은폐된 장애인 보호 대책 부재 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웨스 보건장관은 환자들이 "의무적으로 죽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종교계와 시민단체도 법안 폐기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다. 잉글랜드·웨일스 주교회의 생명윤리 담당인 존 셰링턴 대주교는 "생명의 존엄을 지키고 돌봄이 뿌리내리도록 일한 의원들에게 감사한다"고 발표했고, 사라 전 캔터베리 대주교는 완화의료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Care Not Killing'의 고든은 해당 법안이 "구멍투성이며 실행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완화의료 불평등 해소를 촉구했다. 'Hospice UK'의 CEO 토비 포터는 "임종기 돌봄의 미래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호스피스 재정 개선을 요구했다.
현재 영국 완화의료 현장은 재정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Hospice UK'의 2025년 12월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호스피스의 약 57%가 서비스를 삭감했거나 계획 중이다. 잉글랜드 내 호스피스 병상 2,000개 중 약 20%가 재정 압박으로 사용이 불가능하며, 정부 지원은 전체 비용의 약 33%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법안 반대 진영은 조력사망 논의에 앞서 완화의료 시스템의 정상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과 같은 시기 스코틀랜드 의회는 조력사망 법안을 부결시켰고, 왕실 속령인 저지섬과 맨섬은 각각 조력사망 법률을 통과시킨 뒤 영국 정부의 왕실 재가를 기다리고 있다. 영국 내부에서도 조력사망을 둘러싼 입장이 엇갈리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조력존엄사 관련 헌법소원을 심리 중이다. 영국 논쟁에서 전면에 등장한 완화의료 부족, 취약계층 강압 우려, 적용 범위의 경계 문제 등은 한국 논의에서도 피할 수 없는 쟁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