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자살로 사망한 청년의 97.9%가 사망 전 경고신호를 보냈지만, 주변인이 이를 알아챈 비율은 33.3%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고신호를 인지했더라도 적절한 전문 개입으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는 22일 온·오프라인으로 '2026년 서울시 청년 자살예방 정책 세미나'를 개최하고, 2024~2025년 청년 고인 유족을 대상으로 수행한 '서울형 심리부검' 결과를 공개했다. 서울시는 2021년부터 서울형 심리부검을 수행해왔으며, 2024년부터는 청년 고인 사별 유족을 주요 대상으로 한 연구를 추진해왔다.
심리부검은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고인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애도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자살사망자의 복합적 동기와 생물심리사회적 요인을 심층 분석해 자살예방정책의 근거를 마련하는 연구방법론이다.
경고신호 있어도 전문 개입 연결 안 돼
책임연구자인 서종한 영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이날 '서울시 청년고인 유족 대상 서울형 심리부검 결과분석 및 제언'을 발표했다. 서 교수는 자살사망 청년의 97.9%가 사망 전 언어·행동·정서 세 영역에서 하나 이상의 위험 신호를 보였다고 밝혔다. 세 영역 모두에서 신호를 보낸 사례는 24명(51%)이었다.
서 교수는 "위험 신호가 나타났음에도 적절한 전문 개입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이 가장 큰 과제"라며 데이터 기반 고위험군 조기 발견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분석 결과 청년 자살의 위험요인은 4개 수준으로 나타났다. 개인내적 수준에서는 아동청소년기 역경 경험, 정신질환 진단 관련 스트레스 등이 꼽혔다. 정신건강 치료·상담 경험률은 85.4%였으나, 6개월 미만 단기 이용 비율이 30.8%에 달했고 치료반응 호전은 17.1%에 그쳤다.
대인관계 수준에서는 직업 관련 스트레스(소진·번아웃)가 60% 이상의 고빈도 위험요인으로 확인됐고, 조직·단체 수준에서는 경제적·부채 스트레스가 50% 이상으로 나타났다.
채무·실업·생활 문제뿐 아니라 투기적 재테크와 투자 손실 경험도 주요 위험 지표로 분석됐다.
사회적 고립도 두드러진 특성이었다. 1인 가구 비율은 31.9%, 미혼 비율은 72.3%였으며, 취직·이사 직후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는 양상이 확인됐다. 서 교수는 직장 내 사회연결망의 중요성을 별도로 짚었다.
성별에 따른 차이도 나타났다. 여성 청년은 친밀한 관계 폭력·스토킹·디지털 성범죄 피해 등에 대한 사법기관 연계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남성 청년은 음주 상태 중 자살, 높은 부채 수준 등이 주요 특성으로 확인됐다.
서 교수는 제언으로 고위험성 분류체계와 관리계획 프로토콜 마련, AI 기반 자살위험요인 연결성 분석, 다기관 협력 자살위험 평가 및 관리 센터 구축 등을 제안했다.
"전달 체계 혁신해 위기 청년 적극 발굴"
주지영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상임팀장은 '청년 심리부검에서 정책으로: 서울형 청년 자살예방정책 제안'을 주제로 '서울형 청년 자살예방 로드맵'을 제시했다.
주 상임팀장은 청년 자살을 "마지막 사건"이 아니라 누적된 취약성과 보호요인 부재의 결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을 무너지게 만든 경로로는 △경제위기 △성장기 역경 △학업·진로 전환 △접점·관리 공백 네 가지가 제시됐다.
경제위기와 관련해서는 채무 규모 자체보다 이면의 수치심·은폐·수면과 일상의 붕괴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청년 경제위기 신호로는 △휴대폰 정지 △월세 체납 △투자 손실 △보이스피싱 △전세 피해 △채무조정 절차 중 불안심리 심화 △가족에게 부채·실패 숨기기 등이 제시됐다.
진로상실·실패 경로에 대해서는 '쉬었음' 상태, 장기 수험 등을 사전 징후로 보고, 진로 상실에 대한 지지적 애도상담과 청년센터·고용복지 연계 개입을 제안했다. 대학·학원·직업훈련기관 종사자와 또래를 "진로상실게이트키퍼"와 "일상회복게이트키퍼"로 육성해 접촉면을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주 상임팀장은 "위기 상황에 놓인 청년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필요한 서비스를 적시에 연계할 수 있도록 전달 체계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사후 대응에서 선제적 개입으로" 패러다임 전환 촉구
종합토론은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했다. 토론에는 김동하 대진대학교 보건경영학과 교수, 신소미 서울광역청년센터 센터장, 이재정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 공동대표가 참여했다.
김동하 교수는 청년들의 경제적 위기가 수치심 형성→도움 요청 회피→채무추심 과정에서의 완전한 고립으로 이어지는 심리적·관계적 붕괴 과정을 강조했다. 그는 기존 자살예방 정책이 단일 위험요인 중심의 개인 정신건강에 초점을 맞추고 고위험군 선별에 집중해왔다면, 앞으로는 장기 미취업·부채·고립 등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을 포괄하고 위험요인을 조기에 발견하는 생애경로 기반 선제적 개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동기부터 청년 전환기를 포괄하는 선제적 모니터링 확장의 필요성도 덧붙였다.
신소미 센터장은 자살사망 청년의 97.9%가 경고신호를 보냈음에도 주변인의 인지 비율이 33.3%에 그친 현실이 "청년이 안전하게 연결될 수 있는 사회적 전달체계의 부재를 의미한다"고 짚었다. 신 센터장은 금융위기 상황에서의 심리·금융 통합 지원체계 강화, 아동기 역경 케어를 통한 위험 경로 차단, 장기적 관계망을 제공하는 연속적 관리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이번 세미나는 단순 통계 분석을 넘어 사회적 고립 예방과 위기 청년-지역사회 연결에 초점을 맞춘 '연결형 정책' 마련을 목표로 기획됐다. 경제적 파탄, 대인관계 스트레스, 정신질환 등 고위험 청년들을 지원하기 위한 서울시 차원의 선제적 대책이 향후 정책 반영 여부와 함께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