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 22일 오전, 강릉의 호스피스 병원 갈바리의원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특별 연주가 펼쳐졌다. 2025 하슬라국제예술제 특별공연 '갈바리의 선물'로 마련된 이 무대는 환우와 가족, 봉사자만을 위한 비공개 공연으로 진행됐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갈바리의원 특별공연이다. 올해 예술제의 주제인 '선물(Gift)'에 맞춰 예술가의 재능을 하늘이 준 선물로 보고, 그 재능을 나누는 순간 예술이 완성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이번 연주는 40여 년간 사용해 온 오래된 피아노를 대신해 새롭게 기증받은 피아노로 선보이는 첫 공연이기도 했다. 화려한 조명도 별도의 무대 장치도 없었지만, 선우예권이 건반 위에서 풀어낸 선율은 병동을 따뜻하게 채웠다.
첫 곡은 슈베르트의 '즉흥곡 D.899'이었다. 맑고 서정적인 선율이 흐르자 병동의 분위기가 살아났고, 창가에 맺힌 빗방울이 운치를 더했다. 이어 연주된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서곡 주제에 의한 빈의 저녁'에서는 환우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후 쇼팽의 프렐류드 24곡 중 일부가 연주됐다. 선우예권은 건반 하나하나에 삶의 아름다움과 회한을 담아내며 환우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연주가 끝나자 병동 안에서 '앙코르'를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외침은 단순한 공연 요청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처럼 들렸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앙코르 무대에서 선우예권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에 이어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연주했다.슈만의 선율은 환우들에게 깊은 위로가 됐고, 생의 찬가가 되어 병동을 가득 채웠다.
조재혁 하슬라국제예술제 예술감독은 "예술이 누군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순간, 그것이 진짜 선물"이라고 전했다.
갈바리의원은 1965년 호주에서 파견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설립한 아시아 최초의 호스피스 병원이다. 호스피스라는 개념조차 낯설던 시절부터 생의 마지막 길을 함께 걸어온 공간으로,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삶을 마주하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다.
콘서트홀이 아닌 호스피스 병동에서 울려 퍼진 이날의 연주는 예술이 삶의 끝자락에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음악이 건네는 위안의 무게는 어떤 무대보다 깊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