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은중과 상연>에서 말기 암 환자인 상연(박지현 분)은 고통 속의 연명 대신 스위스로 떠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길을 택한다. 친구 은중(김고은 분)의 배웅 속에 맞이한 그녀의 죽음은 시청자들에게 '존엄한 죽음(Well-dying)'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드라마 속 상연의 선택처럼 한국에서도 일명 '조력 존엄사법' 입법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국민들이 사용하는 '존엄사'라는 용어에 심각한 혼란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연구에 따르면 막연히 '존엄사'에 찬성했던 사람들도 구체적인 의료 행위(독극물 처방 등)를 인지하면 찬성 입장을 철회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존엄사'는 안락사인가, 연명의료 중단인가? 용어의 혼동
10일 대한의학회지(JKMS) 11월호에 게재된 성누가병원 김수정·신명섭 교수팀과 서울대 허대석 명예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존엄사'라는 단어를 서로 다른 의미로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연구팀이 지난해 6월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7.2%는 현재 합법인 '연명의료 중단'을 존엄사라고 인식했지만, 34.3%는 불법인 '의사조력자살(PAS)'을 존엄사라고 생각했다. '적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로 보는 비율도 27.3%에 달했다.
이는 <은중과 상연>에서 상연이 선택한 '스위스행(조력 자살)'과 한국 병원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산소호흡기 제거(연명의료 중단)'가 '존엄사'라는 하나의 단어 아래 뒤섞여 인식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좋은 죽음'을 뜻하는 용어인 '존엄사'가 실제 의료 행위의 본질을 가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시나리오 효과'다. 연구팀은 참여자들에게 단순히 용어만 제시했을 때와, 구체적인 의료 행위가 묘사된 시나리오를 읽게 했을 때의 찬성률 변화를 측정했다.
용어만 제시했을 때 '의사조력자살(PAS)'에 대한 초기 찬성률은 72.1%로 매우 높았다. 이는 미디어 등을 통해 형성된 "고통 없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긍정이 반영된 수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환자가 의사에게 치명적인 약물을 처방받아 스스로 투약한다"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하자, 찬성률은 47.0%로 25%p 이상 급락했다. 스위스의 '안락사' 역시 자발적 의사 결정이 필수로 조력 자살 형태다.
반면, 현재 시행 중인 '연명의료 중단'은 시나리오를 본 후 찬성률이 75.5%에서 81.0%로 오히려 상승했다.
자신이 말기 환자가 되었을 때의 결정을 묻는 질문에는 '연명의료 중단'을 택하겠다는 응답이 41.3%로 가장 높았다. 드라마 속 상연과 같은 '안락사'는 35.5%, '의사조력자살'은 15.4%에 그쳐, 대다수 국민은 인위적인 죽음보다 자연스러운 임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구와 다른 한국적 특수성... "가족에게 짐 되기 싫어서"
연구팀은 서구 국가들과 다른 한국만의 특이점도 발견했다. 통상적으로 서구에서는 젊고 진보적인 성향일수록 안락사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50세 이상 고령층의 안락사 및 조력 자살 지지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가족 중심적 문화'와 '열악한 돌봄 현실' 탓으로 분석했다. 한국 노인들에게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인식이 강박처럼 자리 잡고 있으며, 부족한 호스피스 인프라와 높은 간병비 부담, 우울증 등이 노인들을 안락사 찬성으로 내몰고 있다는 해석이다.
연구를 주도한 허대석 명예교수 팀은 "용어의 혼란이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며 "의료적 관점을 반영한 객관적인 용어 사용은 생애 말기 의사 결정에 관한 소통, 연구, 정책에서 필수적"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