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으로 건강하지만 극심한 우울증과 불안을 겪어온 네덜란드 여성 조라야 테르 비크(Zoraya ter Beek) 씨가 최근 조력사망(assisted dying) 최종 승인을 받고 생을 마감한 사실이 알려지며, 정신질환에 대한 안락사 허용 범위를 두고 전 세계적인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네덜란드 현지 언론과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 등에 따르면, 테르 비크 씨는 이번 달 초 의료 당국으로부터 조력사망 신청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 이는 그녀가 2010년 조력사망을 신청한 지 약 3년 반 만에 내려진 결정이다.
◇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 3년 반의 기다림 끝에 얻은 승인
테르 비크 씨는 오랜 기간 대화 요법과 약물 치료를 병행해왔으며, 30회 이상의 전기 경련 요법(ECT) 등 집중적인 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나 2020년 8월, ECT 치료를 마친 후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더 이상의 치료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그해 12월 의사조력자살을 신청했고, 심사 끝에 합법적인 임종을 맞이했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국가로, '개선될 가능성이 없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의사조력사망을 허용하고 있다.
자신의 결정을 두고 일각에서 비판이 제기되자 테르 비크 씨는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은 정신병에 걸리면 제대로 생각할 수 없다고 여기는데, 이는 모욕적인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녀는 "일부 장애인들이 조력자살에 대해 갖는 두려움을 이해한다"면서도 "네덜란드에서는 이 법이 20년 넘게 시행되어 왔으며, 매우 엄격한 규칙하에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 팽팽한 찬반 양론… "자율성 존중" vs "미끄러운 경사면 우려"
테르 비크 씨의 사례는 말기 암과 같은 신체적 질환이 아닌, 정신적 고통을 근거로 한 조력사망이라는 점에서 생명윤리 논쟁의 중심에 섰다. 현재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생명 보호의 의무 사이에서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조력사망을 찬성하는 측은 생명윤리의 기본 원칙인 '환자의 자율성 존중'을 핵심 근거로 든다. 이들은 정신질환 역시 난치성일 경우 환자가 겪는 고통은 신체적 질환 못지않으며, 적격성 기준과 보호 조치 등 여러 단계의 엄격한 절차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임종 지원이 불치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심리적 안심과 평온함을 제공한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꼽는다.
반면 반대하는 측은 정신질환에 대한 조력사망 허용이 자칫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이 되어 자살 전염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들은 사회가 고통받는 사람이나 장애인, 상호의존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생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의료기관의 본분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지, 죽음에 관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사례는 의료 기술의 발전과 인권 의식의 변화 속에서 '존엄한 죽음'의 정의와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국제 사회에 던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