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의된 이른바 '조력존엄사법(의사조력자살)'에 대해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과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안락사 허용보다 더 시급한 과제-생애말기 돌봄 체계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참석한 의료계, 법조계, 환자단체 전문가들은 열악한 호스피스 인프라와 사회적 돌봄 시스템의 부재 속에서 조력존엄사 도입은 자칫 '사회적 타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하며, 생애 말기 돌봄 체계의 선진화가 시급한 선결 과제임을 전했다.
■ "한국에서의 '좋은 죽음'은 가족에게 짐 되지 않는 것"
통계청의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85세 이상 초고령층 비율이 사상 처음 10.1%를 기록하며 임종기 돌봄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토론회 주최자인 신현영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조력존엄사에 대한 성급한 논의보다는 웰에이징과 웰다잉을 포함한 생애 말기 의료·돌봄 체계를 먼저 정비해야 한다"며 "국민의 존엄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국가의 역할을 논의할 때"라고 토론회의 취지를 밝혔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대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기획이사는 한국 사회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분석했다.
김 이사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통증으로부터의 해방'이나 '존엄한 대우'를 좋은 죽음으로 정의하는 반면, 한국인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을 꼽는다"며 노인 빈곤율과 맞물린 현실을 지적했다. 또한 "대다수 국민이 자택 임종을 원하지만, 실제로는 76% 이상이 의료기관에서 사망한다"며 "특히 호스피스 병동 대기 기간(약 3~4주)이 환자의 잔여 생존 기간 중앙값(14일)보다 길어, 서비스를 이용조차 못 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과잉 의료와 인력 부족, 일당정액제 수가 제도로 인해 한국의 임종기 돌봄은 '질 높은 배려가 결여된 상태'라고 진단하며, 일본의 '종말기 재택케어' 인센티브 제도 등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국민 80% 찬성? '죽고 싶다'가 아니라 '고통 없이 살고 싶다'는 호소"
이어 발표에 나선 강정훈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윤리이사는 '국민 80%가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통계의 이면을 분석했다.
강 이사가 공개한 학회의 심층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인의 61%가 말기 환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체계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정부와 국회의 정책 우선순위에 대한 답변이었다.
강 이사는 "국민들이 가장 중점을 둬야 한다고 꼽은 과제는 '간병 및 호스피스 등 사회적 지원 체계 강화(80.7%)'였으며, '의사조력자살 합법화'는 13.6%에 불과해 6배가량의 차이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두고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죽게 해주는 법'이 아니라 '고통 없이 잘 살다 갈 수 있는 환경'임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박성배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총무이사는 '지역사회 중심의 생애 말기 돌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박 이사는 "평소 지역사회 일차 의료기관이 거동 불편 환자를 주치의로서 돌보고, 이것이 임종 돌봄으로 이어지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거점병원이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다.
■ 패널 토론: "객관성 역량 평가 부재 및 준비 없는 법안 도입은 현대판 고려장 우려"
허대석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 패널 토론에서는 각계 전문가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김철민 대한가정의학회 재무이사는 임상 현장의 경험을 전했다. 김 이사는 "환자들이 '죽여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극심한 고통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적극적인 통증 조절과 다학제적 지지가 제공되면 안락사 요청을 철회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 증언했다.
그는 "때때로 죽여달라는 중환자의 간청은 안락사에 대한 의향이 아니라, 도움과 애정을 구하는 고뇌에 찬 간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경은 대한종양내과학회 윤리이사는 인프라 부족 문제를 질타했다. 이 교수는 "호스피스 인프라가 너무 부족해 전문기관이 아닌 요양병원을 추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의사조력자살이라는 단어 자체가 의사로서의 가치관을 흔들 정도로 무거운 주제임에도 너무 쉽게 논의가 진행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협회 차원의 '강력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이사는 ▲'말기 환자' 등 용어에 대한 사회적·의학적 합의 부족 ▲자살예방법과의 상충 및 법적 혼선 초래 ▲OECD 자살률 1위 국가에서의 생명경시 풍조 조장 가능성 등을 제기했다.
특히 "돌봄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조력존엄사 논의는 노인들이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죽음을 강요받는 '현대판 고려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객관적 평가 역량이 부재한 상황에서 위원회만으로 자살을 합법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 "자기결정권에 '자살 권리' 미포함"... 환자 단체도 시기상조론
법적인 관점에서 이석배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존엄사'라는 용어의 자의적 사용"을 비판했다. 이 교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자살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며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연명의료를 거부함으로써 얻는 반사적 효과일 뿐, 의사에게 자살 조력을 요구할 권리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임종 환자의 존엄성 유지를 돕는 것이 의사의 임무이지, 자살을 돕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환자 단체를 대표해 참석한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역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안 대표는 "질 높은 생애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환경도 만들지 못한 채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입법"이라며 "경제적 이유로, 혹은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게 만드는 '최악의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상균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은 현재의 한계를 인정하고 개선 의지를 밝혔다. 한 과장은 "호스피스 이용률이 23%대에 정체되어 있다"며 "향후 자문형·가정형 호스피스 등 다양한 유형을 확충해 이용률을 30%까지 끌어올리고, 고가 의약품 별도 수가 산정 등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