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가 오는 13, 14일 양일간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는 행사를 갖는다.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초콜릿을 주고받는 2월 14일, 이날은 107년 전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사형선고일’이기도 하다. 용산구는 나라를 위해 몸바친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 받은 날을 기억하고자 13~14일 추모행사를 연다고 8일 밝혔다.
13일에는 용산구 효창공원에 있는 안 의사의 가묘(假墓)를 찾아 단체헌화를 하는 ‘효창원 가는 길’과 ‘안중근 의사 UCC 상영’, ‘우리 가슴 속의 안중근 토크콘서트’를 진행한다. 14일에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소원’ 영상물을 SNS로 배포할 예정이다.
이 행사는 안 의사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유해를 고국으로 옮겨 장례 지내는 것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안 의사는 순국 전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옮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조국을 위해 헌신한 안 의사의 마지막 소원은 ‘대한독립’과 ‘고국귀환’이었다”며 “안 의사의 유해를 하루속히 발굴하고 효창원 빈묘에 제대로 모시기 위해서는 범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안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청년기에는 말타기와 사냥에 능했다. 1895년 카톨릭에 입교하고 신식 학문을 접했다. 1906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세우고 인재양성에 힘썼다.
1907년부터 의병운동에 참여해 연해주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으로 활동했다. 1909년 동지 11명과 손가락을 끊고 구국투쟁을 맹세했다. 그해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하얼빈에 도착하자 안 의사는 이토를 사살하고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돼 일본 관헌에 넘겨진다.
이듬해 2월 14일 사형이 선고되고 3월 26일 이 의사는 32세의 짧은 일기를 끝으로 처형당한다. 옥중에서 자서전(안응칠 역사)과 미완의 ‘동양평화론’, 붓글씨 200여점을 남겼다.
안 의사의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뤼순감옥 공공묘지’는 잡목이 우거진 나지막한 야산이다. 1907년부터 1942년까지 뤼순감옥에서 죽은 대부분의 수형자가 이곳에 묻혔다. 주변 지역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유해 발굴이 시급한 상황이다.
안 의사 가묘는 용산구 효창공원 내 삼의사(이봉창·윤봉길·백정기) 묘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지난 1946년 백범 김구 선생 주도로 조성됐다. 묘단 아래에는 '유방백세(遺芳百世·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길이 남다)'라는 네 글자를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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