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본인이 살던 집에서 생을 마감하기를 원하는 국민의 바람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20일 발간한 '내 집에서 생을 마감할 권리를 위한 자택임종 활성화 방안' 보고서(이윤경 입법조사관)에 따르면, 장기요양 돌봄수급 노인의 67.5%가 자택 임종을 희망했으나 실제 자택 사망률은 14.7%에 그쳤다. 특히 호스피스 이용 환자의 경우 자택 임종 비율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 '가정 돌봄' 원해도 병원으로 … 자택 임종 비율 8.3%로 급감
보건복지부, 중앙호스피스센터의 '2024 국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연례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2024년) 가정 돌봄을 선호한다고 답한 호스피스 환자 5,086명 중 실제 자택에서 생을 마감한 비율은 8.3%에 불과했다. 이는 2021년 14.0%, 2022년 13.2%, 2023년 10.6%에 이어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는 수치다.
반면 의료기관에서의 사망 비율은 72.9%에 달해 고비용의 병원 임종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이는 환자의 선호도와 정반대되는 결과다. 신규 호스피스 환자의 돌봄 선호 장소를 조사한 결과, 입원형(단일)과 입원+자문형을 제외한 모든 유형에서 '가정에서의 돌봄'을 1순위로 꼽았다. 특히 가정형(단일) 호스피스 환자는 97.6%, 가정+자문형 호스피스 환자는 88.1%가 가정 돌봄을 원했다.
가정형 호스피스를 이용한 사별가족의 만족도도 매우 높게 나타났다. 2023년 만족도 조사에서 가정형 호스피스에 대한 '매우 만족' 응답률은 74.4%로, 입원형(53.2%)이나 자문형(49.3%)보다 월등히 높았다. 또한 임종 전 7일간 고인의 삶의 질 평가에서도 가정형 호스피스 이용자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 자택 임종이 '웰다잉(Well-dying)'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 4개 시·도에는 가정형 호스피스 전문기관 '0곳'
이처럼 수요와 만족도가 높음에도 자택 임종이 어려운 주된 원인으로는 인프라 부족이 꼽힌다. 2025년 5월 기준 전국의 가정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39개소에 불과하다. 이는 2022년 38개소에서 거의 늘어나지 않은 수치로, 정부가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을 통해 2028년까지 80개소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목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보고서는 "정부의 호스피스 사업 예산이 2025년 기준 110.1억 원 수준이며, 이 중 가정형 호스피스 사업의 예산이 17억 원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하며 "영국의 경우 2024년 말 호스피스 시설 및 서비스 개선을 위해 1억 파운드(약 1,889억 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지역 간 불균형도 심각하다. 전국 17개 시·도 중 세종특별자치시, 경상북도, 경상남도, 전라남도 4개 광역지자체에는 가정형 호스피스 전문기관이 없다. 충청남도, 충청북도, 광주광역시, 제주특별자치도엔에는 각 1개소만 지정되어 있다.
당초 전문기관 미지정 지역인 세종특별자치시를 제외한 16개 시・도 중 7개 시・도(광주, 강원, 충북, 충남, 전남, 경북, 경남)의 자체충족률은 전국 평균(77.6%)에 미달한다. 수도권과 대도시 위주로 서비스가 제공되고, 돌봄 수요에 비해 공급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에 거주하는 노인 및 독거노인에 대한 지역사회 차원의 서비스 제공이 어려운 상황이다.
의료기관의 참여가 저조한 이유는 낮은 수가와 인력 부담 때문이다. 의원급 의료기관이 하루 평균 71명의 외래환자를 진료하는 반면, 가정형 호스피스는 이동 시간 등으로 인해 하루 4~5명 방문에 그친다. 기회비용 대비 보상이 적어 민간 병원의 참여 유인이 낮다. 현재 운영 중인 39개소 중 84.6%인 33개소가 종교재단 병원이나 국·공·시립 병원에 쏠려 있는 이유다.
◇ "집에서 돌아가시면 경찰 조사받아야"… 유족 두 번 울리는 검안 절차
까다로운 사망 확인 절차도 자택 임종을 기피하게 만드는 큰 장벽이다. 의료법상 병원에서 사망하면 즉시 사망진단서가 발급되지만, 자택에서 사망할 경우 사인(死因)을 알 수 없으므로 반드시 최초 목격자가 112에 신고하여 경찰 조사와 검안의의 사체 검안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은 고인을 모신 채 최소 2~3시간 이상 경찰 조사와 검안을 기다려야 하며, 사인이 불분명할 경우 부검 등으로 장례가 지연되기도 한다. 말기 암 환자나 호스피스 이용자처럼 자연사(병사)가 명백한 경우에도 예외 없이 변사 처리 절차를 밟아야 해 유족들의 심리적·절차적 부담이 가중된다.
현장 검안을 담당할 인력도 부족하다. 주로 지역 병·의원 의사나 공중보건의가 위촉되어 검안을 수행하는데, 공중보건의 수는 2020년 1,901명에서 2025년 945명으로 급감해 신속한 대응이 어려워지고 있다.
◇ 비용 부담 형평성 논란… 암 환자는 5%, 만성질환자는 20%
질환별로 다른 본인부담금 체계도 문제로 지적됐다. 말기 암 환자는 호스피스 이용 시 진료비의 5%만 부담하면 되지만, 후천성면역결핍증이나 원발성 담즙성 경변증 환자는 10%,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이나 만성 간경화, 만성호흡부전 환자는 20%를 부담해야 한다. 동일한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함에도 질환에 따라 최대 4배의 비용 차이가 발생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다.
또한 현행 호스피스 대상 질환이 5개군으로 한정되어 있어, 심부전, 신부전 등 비(非)암성 만성질환 말기 환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보건복지부 델파이 조사 결과 전문가들은 심부전과 신부전을 우선 고려 대상 질환으로 제안했으며, 노쇠까지 호스피스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해외 선진국 자택임종 지원 정책 비교
◇ 영국, ‘죽음의 질’ 세계 1위… IT 시스템으로 환자 정보 공유
영국은 이코노미스트연구소(EIU)의 ‘죽음의 질 지수’ 평가에서 2010년과 2015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며 선진적인 임종 돌봄 국가로 꼽힌다. 이는 2008년 영국 보건부(DH)가 발표한 ‘생애말기돌봄(EOLC. End Of Life Care) 전략’을 통해 ‘좋은 죽음’을 정의하고, 인식을 전환한 결과다.
특히 2009년 보건부와 전국완화의료위원회(NCPC)가 설립한 민관합동기구 ‘다잉 매터스(Dying Matters)’는 죽음을 금기시하는 문화를 바꾸는 데 주력했다. 또한 ‘당신의 1% 찾기’ 캠페인과 국립 GSF 센터의 ‘사전식별지침(PIG)’을 통해 의사들이 임종이 임박한 환자를 조기에 파악하고 맞춤형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전자 완화의료 조정 시스템(EPaCCS)’도 핵심 역할을 한다. 일반의(GP), 간호사, 구급대 등 다양한 의료진이 환자의 사전돌봄계획(ACP)과 상태(5단계 코드 분류)를 공유해 위기 상황 시 불필요한 응급실 이송을 막고 자택 임종을 지원한다. 그 결과 영국 성인 호스피스 이용자의 45%(2016년 기준)가 가정형 서비스를 이용할 만큼 자택 돌봄이 활성화되어 있다.
◇ 일본, ‘재택의료·간호’ 수가 가산으로 의료진 참여 유도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40년까지 생애말기 의료·돌봄 자원을 2배 이상 확보한다는 목표 아래 ‘인생회의'(ACP. 일본 웰엔딩의 실천운동. Advance Care Planning) 보급에 힘쓰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재택의료 확충을 위해 24시간 대응이 가능한 ‘재택요양 지원 진료소’를 2006년 설치하고, 의료와 개호 서비스 간 연계를 강화했다.
특히 수가 제도를 적극 활용해 의료진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1994년 ‘터미널케어’(임종지원단계에서 의료를 중심으로 하는 제공체계) 등을 신설하고, 2018년 개호보험법(노인장기요양법 유사) 개정을 통해 복수의 의료기관이 팀을 이뤄 방문진료를 할 수 있게 했다.
노인 요양시설에서도 임종까지 돌봄을 제공할 경우 ‘임종돌봄 간호가산’(간호 수가)을 더 높게 책정해 시설 내 임종을 지원한다. 자택 사망 시 평소 진료하던 의사가 방문해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는 체계가 갖춰져 있어 경찰 조사 등의 부담도 덜하다.
◇ 한국, 인프라 부족·경직된 검안 절차 … “임종 돌봄 휴가·전담의사제 필요”
이윤경 조사관은 보고서를 통해 초고령사회와 다사사회에 대비한 자택임종 활성화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먼저, 자택 임종을 준비하는 가족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임종돌봄 휴가' 도입을 제안했다. 가족에게 전가되는 마지막 1~2주의 집중 돌봄 시간과 소득 손실을 제도적으로 보전해 실질적인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가정형 호스피스 인프라 확충과 수가 현실화다. 전문기관 지정 요건을 완화하고, 재택의료와 방문간호에서 임종 서비스 수가를 인상해 공급자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또한 가정에서 병원 수준의 돌봄이 가능하도록 산소발생기, 흡인기 등 필수 전문 의료기기를 건강보험 급여(보장구 대여) 항목에 포함할 것을 주문했다.
셋째, 사망 확인 절차의 간소화다. 지역 내 병·의원 의사, 공공병원, 공중보건의를 중심으로 '임종확인 전담의사 풀(Pool)'을 구성하고, 호스피스 등록 환자 등 명백한 자연사에 대해서는 간소화된 절차로 사망진단서를 발급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