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돌봄의 질'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되면서 노인의 자기결정권 존중 여부가 핵심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의 재가돌봄 제도가 선진국에 비해 노인의 주체적인 선택권을 보장하는 장치가 미흡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6월 발간한 '노인의 자기결정권 존중 관점에서 한국, 미국, 호주, 일본의 재가돌봄 제도 비교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서비스 유형이 단순하고 전달 과정에서 노인의 참여가 제한되어 있어 실질적인 자기결정권 행사가 어려운 구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 "살던 곳에서 나이 들고 싶다"... 돌봄 패러다임의 변화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의 87.2%가 현재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하며, 건강 악화 시에도 절반에 가까운 48.9%가 친숙한 환경에 거주하기를 원했다. WHO(2015) 역시 '건강한 노화'를 위해 '살던 곳에서 나이 들어감(AIP. Ageing in Place)'과 '선택권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보고서는 "현재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돌봄은 '수발'의 개념에 가까우나, 진정한 돌봄은 노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잔존 능력을 유지하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인층으로 진입하며 '욜드(YOLD. Young Old. 젊게 사는 노인)', '오팔(OPAL. Old People with Active Lives. 활동적인 노인)' 등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의 노인이 증가함에 따라, 돌봄 과정에서의 자기결정권 주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 미국·호주·일본의 사례 "노인의 자율성을 제도적으로 보장"
보고서는 한국과 복지국가 유형(자유주의)이 유사한 미국, 호주, 일본의 사례를 비교했다.
미국의 재가돌봄 서비스인 IHSS(In-Home Support Services)는 한국의 재가급여와 유사한 가사 지원 및 개인 돌봄을 제공하면서도, 그 전문성과 사후 관리 체계 면에서 확장성을 보여준다.
IHSS는 단순 청소나 식사 준비 같은 가사 지원을 넘어, 의료 장비 청소 및 관리, 호흡 보조 등 난도가 높은 개인 돌봄 영역까지 포괄한다. 특히 '건강관리 서비스’는 등록 간호사 등 면허를 소지한 보건 전문가의 관리하에 의료적 처치를 제공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서비스 이용자가 돌봄 인력의 실질적인 고용주로서 돌봄 계획 수립 및 교육에 직접 참여하며, 24시간 비상 대응 서비스와 비상 상황 계획 등 체계적인 안전망을 스스로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호주의 재가돌봄 체계(Aged Care)는 연방정부 지원 이래 정부와 이용자가 비용을 공동 부담하는 구조로 운영되며, 전문 서비스인 '홈 케어 패키지'(HCP)를 통해 돌봄을 제공한다.
HCP는 노인의 자립을 돕기 위해 서비스 영역을 세 가지로 정밀하게 구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간호와 치료, 식단 관리를 포함하는 '건강 및 독립성 유지 서비스', 가사 지원과 주택 개조 및 기구 대여를 포괄하는 '자택 내 안전 지원 서비스', 그리고 교통수단과 사회적 연결을 돕는 '지역사회 활동 지원 서비스'로 구성된다.
일본의 개호보험은 재가 환경에서 이용 가능한 서비스를 ‘거택서비스’와 ‘지역밀착형 서비스’로 이원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거택서비스는 방문 개호·간호·재활 및 거택 요양 관리지도를 포함한 방문형 서비스부터 통소 및 단기 입소 서비스, 복지용구 대여와 주택 수리 등 광범위한 일상 지원을 포괄한다.
한편, 2005년 개정 시 신설된 지역밀착형 서비스는 지방자치단체인 시정촌이 지역 특성에 맞춰 지정 기준과 수가를 독자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정기 순회 및 수시 대응형 방문 서비스, 야간 대응형 통소 개호, 치매 노인 그룹홈 등 지역 사회의 구체적인 욕구에 대응하는 돌봄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 한국의 한계 "제한된 선택지와 배제된 참여"
반면 한국은 여러 지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첫째, 서비스 유형의 단순함이다. 방문요양 위주의 단순 서비스에 치중되어 있어 재활, 주택 개보수, 24시간 대응 등 해외 사례에서 보이는 전문적이고 다양한 선택지가 부족하다.
둘째, 돌봄 계획 수립 과정에서의 소외다. 개인별장기요양이용계획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에 의해 단독으로 작성되는 경우가 많고, 재가급여기관의 계획 수립 역시 노인의 적극적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다.
셋째, 의사결정지원 제도의 부재다. 발달장애인이나 치매 환자로 국한된 공공후견 제도 외에, 일반적인 재가 노인이 돌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리인이나 옹호인 제도가 부족하다.
보고서는 향후 과제로 ▲서비스 유형의 다양화 및 전문화 ▲돌봄 계획 수립 시 노인 참여 보장 ▲의사결정지원 제도(대리인·옹호인 등) 활성화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가족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가족주의 성향과 돌봄을 사적인 문제로 여기는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며 "돌봄의 궁극적인 가치는 노인의 존엄성 유지에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향후 환경이 구축된다면 이용자에게 의사결정 권한을 이전하는 '자기주도돌봄' 제도의 도입도 적극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