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각당복지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 송출된 '팬데믹 시대와 연명의료결정제도' 토론회는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마주한 생명윤리의 현주소를 정면으로 다뤘다.
라제건 이사장(각당복지재단)은 환영사를 통해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오랜 사회적 노력의 산물임을 강조했다. 라 이사장은 "자신의 삶의 마무리를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청소년기부터 죽음을 성찰하고 준비하는 체계적인 죽음 준비 교육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미래 과제를 제시하며,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김상의 국회부의장은 격려사를 통해 "법 제정 후 불과 3년 만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70만 명을 넘었다는 것은,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원혜영 공동대표(웰다잉시민운동)는 격려사에서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의 핵심 동력이 시민 사회의 꾸준한 노력에 있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국회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과 같은 의정 활동도 중요했지만, 법 제정의 진정한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해 온 시민 단체들로부터 나왔다"고 전했다.
축사에서 김명희 원장(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연명의료 문제를 논의하는 것의 시의적절성을 높이 평가했다. 김 원장은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위기 속에서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마주한 윤리적, 실천적 과제를 전문가들이 함께 논의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주제발표에서 고윤석 교수(서울아산병원)는 '의학적 성찰'에 대해 발제하며 팬데믹이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그는 "팬데믹 상황에서는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 다수의 생명을 구해야 하므로, '생존 가능성이 높은 환자 우선'이라는 평시와는 다른 의료 원칙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고 전제했다. 하지만 "현행법의 '말기-임종기' 구분은 실제 현장에서 매우 모호하여,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치 않아도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치료가 지속될 수 있어 환자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물, 영양, 산소 공급을 연명의료에서 제외하고 의무화한 조항은 환자가 고통으로 거부해도 공급을 강제하게 만들어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며, 특히 병상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진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다른 위급 환자의 치료 기회를 막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종교적 성찰'에 대해 발제한 박은호 신부(가톨릭대 생명대학원)는 종교 윤리의 관점에서 연명의료결정의 원칙을 설명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했다. 그는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정의하는 연명의료는 치료 효과 없이 부담만 가중하는 '예외적 수단'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를 중단하는 것은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환자의 자기 결정은 임종기라는 의학적 판단하에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사되어야 하며, 생명 보호의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마지막으로 "팬데믹 시기 의료 자원 분배는 나이나 장애가 아닌 의학적 판단을 기준으로 하되, 유사한 조건에서는 무작위 배분과 같은 공정한 방식을 적용하고 탈락한 환자에게는 영적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서 박상은 원장(안양 샘병원)을 좌장으로 토론회가 진행됐다.
정극규 원장(동백 성루카 호스피스병원)은 팬데믹으로 인해 호스피스 환자들이 심각한 돌봄 공백에 처했다고 현장의 위기를 전했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대면 상담과 홍보가 위축되었고, 이는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공공의료기관의 호스피스 병동이 코로나 전담 병동으로 전환되면서, 말기 암 환자들이 갈 곳을 잃고 응급실을 전전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돌봄 시스템의 붕괴를 경고했다.
정 원장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미국처럼 온라인 양식 배포 및 등록 시스템을 도입하고,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도 전문성을 유지하며 환자를 돌볼 수 있는 독립형 호스피스 기관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구미정 교수(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는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과학의 이성을 넘어선 자비와 연대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팬데믹은 이 질병이 특정한 '나'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을 통해,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적 연대를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는 장애인, 노숙자,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된다"고 지적하며 이들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다. 구 교수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하는 사회적 애도와 자비의 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서이종 교수(서울대학교 사회학과)는 팬데믹이라는 예외적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법·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인공호흡기 등 한정된 의료 자원을 누구에게 우선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사회적 지침이 없어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며, 이는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두 가지 법 개정 방향을 제시했다. 서 교수는 "연명의료 결정 시점을 '임종기'에서 '말기'로 앞당겨 환자가 더 일찍 호스피스 돌봄을 받으며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가족 간 논의가 어려운 팬데믹 상황을 고려해, 환자가 미리 지정한 법적 대리인의 결정권을 강화하여 환자의 의사가 명확히 존중받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득형 본부장(각당복지재단)은 팬데믹으로 위축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 및 등록 활성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의향서 작성 건수가 급감한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비대면 화상 상담 시스템 도입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 상담은 단순히 대면 상담의 대체재가 아니라, 상담에 더 집중하게 하고 녹화 기능으로 법적 분쟁을 예방하며 온 가족이 함께 죽음 교육에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여러 장점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가족의 방문이 어려운 격리된 임종 환자들을 위해, 방호복을 입은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마지막을 함께하며 인간적 존엄을 지켜줄 수 있는 방안도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호진 사무관(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은 "감염병 대유행 시 의료 자원 배분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깊이 공감하며,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온라인 상담 시스템 도입은 국민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으나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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