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시민운동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공동 주최로 지난 1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다가오는 초고령사회의 웰다잉 정책방향’ 세미나에서는, 임종 단계의 돌봄을 넘어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위한 포괄적인 사회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각계 전문가들의 제언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질’에 대한 정책적 대비는 매우 미흡하다는 공통된 위기의식 속에서 기획됐다.
차흥봉 웰다잉시민운동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웰다잉은 단순히 삶을 잘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결정권의 실현을 통하여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자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2018년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후 1년간 11만 명 이상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등 사회적 관심은 높지만, “단순히 작성 숫자만으로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한 제도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위원회가 작년 발표한 정책 로드맵에 ‘웰다잉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포함되었음을 상기시키며 정책적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작년 초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며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만큼, 관련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나아가 “진정한 의미의 웰다잉을 위해 장기기증, 유산 기부, 장례, 죽음준비 등을 포괄하는 제도화 방안을 준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원혜영·정갑윤·김세연 의원을 대표한 축사에서는 “법 시행 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부여한다는 법의 취지에 따라 임종 문화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고 평가하며, 연명의료를 넘어 유산, 장례, 장기기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삶을 자기주도적으로 마무리하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정책 수립의 기대를 표명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웅철 매경비즈 교육센터장은 한국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죽음 준비 문화인 ‘슈카츠(終活, 종활)’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정책적 시사점을 던졌다.
그는 일본이 연간 130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 ‘다사(多死)사회’에 진입하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서히 진행되는 죽음’이 보편화되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하는 ‘슈카츠’ 문화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현재 고령자의 90%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있으며, 집이나 요양시설에서의 ‘재택 임종’이 증가하는 추세다.
김 센터장은 슈카츠 문화 확산에 따라 등장한 다양한 사회 현상과 비즈니스 모델을 소개했다.
▲자신의 생애 말기 계획을 기록하는 '엔딩노트' 작성 ▲죽음에 대해 자유롭게 소통하는 커뮤니티 '데스카페' ▲신원보증부터 장례, 사후 재산관리까지 대행하는 생전계약 비즈니스 ▲혈연관계가 없는 이들이 함께 묻히는 ‘묘친구’ 커뮤니티 묘지 ▲도심의 묘지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타워형 납골당 ▲주인 사후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펫신탁' 등이 그것이다. 그는 이러한 일본의 사례가 한국의 웰다잉 정책 수립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서이종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이 2015년 기준 ‘죽음의 질’ 평가에서 80개국 중 18위로 비교적 양호하지만, 세부적으로 완화의료 전달 능력은 33위에 그치는 등 정책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성공적인 웰다잉 정책 수립을 위해 정부-시장-시민사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전제하며, ▲청소년기 자아 형성과 자살 예방을 위한 '죽음(준비)교육' ▲암 뿐 아니라 전체 질환으로 확장된 '말기환자의 자기결정권' ▲유류분 제도를 축소하고 상속세 면제 조건의 '재산상속과 공공기부' ▲유족들이 심리적 충격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추모와 사별가족 지원' ▲사회적 죽음을 예방하는 사회안전망 구축 같은 5가지 핵심 정책 이슈를 제시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발제 내용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변재관 한일사회보장정책포럼 대표는 한국의 '웰다잉'과 일본의 '라이프 엔드·엔딩 스테이지' 개념을 비교하며 양국의 법규 정비 및 제정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일본 요코스카시의 '엔딩 서포터' 사업을 사례로 들며 콜센터, 전문 상담사, NPO 연계망을 통해 엔딩노트 배포와 사기 피해 예방 등 실질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사무총장은 한국의 빠른 고령화 속도를 고려할 때 정책 준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우려하며, 세대별 죽음교육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별도의 전문가 제도를 만들기보다는 기존 교육 시스템에 자연스럽게 통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항석 대한요양병원협회 정책위원장은 사망자 3명 중 1명이 요양병원 및 요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현실이지만, 대다수 요양병원이 윤리위원회 구성의 어려움으로 연명의료결정법을 이행할 자격조차 없으며, 임종실 수가 부재, 요양병원 호스피스 사업 지연 등 정책적 지원이 전무한 현실을 지적했다.
이범수 한국상장례문화학회 회장은 "웰다잉 작업 과정은 삶의 종결기에 인간을 변화시키고 재창조하게 할 막강한 힘이 있다"며 웰다잉 교육과정의 중요성을 언급한 후, "임종 전의 무거운 우울과 고통의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안"으로 종교 시민단체들과의 적극적 연계를 주장했다.
임병식 한국싸나톨로지협회 이사장은 일본의 ‘슈카츠’가 자칫 죽음을 비즈니스 상품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며, 한국에서는 죽음학에 근거한 깊이 있는 성찰과 인식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청소년 자살 및 자해 문제 해결을 위해 공교육 과정 안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죽음교육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