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존엄한 생애 마무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족 중심 상속 문화를 진단하고 유산의 사회 환원, 즉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회 '존엄한 삶을 위한 웰다잉 연구회', 웰다잉시민운동, 서울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이번 '생애 마무리 문화 혁신을 위한 정책 세미나'에서는 법·제도적 개선과 시민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세미나의 포문은 국회 주요 인사들의 축사로 열렸다. 김민석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한국은 초고령사회로 이행하고 있으며, 삶의 마지막 단계로서 죽음을 포용하고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사회적 담론과 제도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라며 국회 차원의 협력을 약속했다.
양경숙 의원은 "상속재산은 줄고 증여세가 강화되는 추세 속에서 사회 약자와 공동체 발전을 위한 기부에는 점점 인색해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문화적 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참여를 다짐했다.
인재근 의원은 "'특별한 재산기부'가 '평범한 나눔'이 되기 위해서는 자녀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걱정을 해결하고 공동체 인식을 넓히는 사회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온라인으로 참여한 서영석 의원은 "'나는 누구와 나눌 것인가?'와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이냐?'는 질문을 통해 물질적 유산을 넘어 사회적 관계와 삶의 기록을 남기는 유언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고 제언하며 관련 법과 정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진 주제 발표에서 박소정 서울대 BK연구교수는 '한국의 가족주의와 유산 및 유언 문화' 발표를 통해 "한국의 강력한 가족주의는 조선 성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압축성장 과정에서 그 가치가 더욱 공고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디어에서 비혈연 상속이나 상속 포기가 이례적 사례로 보도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유산 기부에 대한 정보 부족을 문제로 꼽았다.
이나빈 한국트라우마연구교육원 연구원은 서울 거주 60~70대 6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87.3%(524명)가 재산의 가족 상속을 선호한다고 답했으며, 그 이유로 '가족이 잘사는 것이 나의 도리와 책임'이라는 응답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 연구원은 "특히 자녀 상속을 선호하는 비율이 높으며, 노후에 자녀에게 돌봄을 받을 기대가 낮더라도 전통적 가족 규범에 대한 인식과 부모의 헌신적 동기가 작용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강명구 서울대 명예교수는 연구 결과를 총평하며, 한국의 상속 문화가 강력한 '마음의 습속(habits of heart)'으로 자리 잡은 가족 중심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87.3%가 가족 상속을 정상적 실천으로 인식한 반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의사는 1.6%에 불과했다.
강 교수는 "대부분의 시민이 재산을 '자신과 가족이 함께 일군 것'으로 인식하며, 국가나 사회공동체의 도움으로 이룩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극소수"라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닫힌 가족주의'를 넘어 친구, 이웃 등 공동체를 포괄하는 '열린 가족주의'로의 문화 혁신을 주문하며, 서울시의 '웰다잉 문화조성 조례'가 호스피스나 연명의료 등 '생명' 마무리에 국한된 한계를 지적하고 종합적인 '생애' 마무리 정책 추진을 위한 협의체 운영과 캠페인 등을 제안했다.
종합토론에서는 유산 기부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됐다.
김희정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영국 사례를 들며 제도적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영국은 유산의 10% 이상 기부 시 상속세를 10% 감면해주는 '레거시 10' 법안을 통해 전체 기부금의 33%를 유산 기부로 확보했다.
김 사무총장은 "2019년 국내 조사에서도 50세 이상 국민의 51.6%가 상속세 감면 등 유산기부법이 제정되면 기부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며, "착한 마음에만 호소할 것이 아니라 법·제도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순무 한국후견인협회 회장은 "2020년 기준 60대 이상이 전 재산의 80%를 소유하고 있으며, 무자녀 부부나 1~2인 가구가 늘면서 기부에 대한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돌봄을 제공할 자녀가 없는 노년층은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는 만큼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도리라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영환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유산 기부가 가족의 반대로 무산되는 경우가 많고, 국가 전체 모금액 중 유산 기부 비율이 3%대로 미국(8%대)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언장 효력, 세금 문제 등 법적 시스템 미비와 사회적 인식 부족을 문제로 꼽으며, "웰다잉 프로그램과 연계해 유언장 쓰기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유산 기부에 대한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민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앙정부 차원의 관련 근거법이 있어야 서울시도 관련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며 시 차원 정책의 한계를 언급하고, 대안적 캠페인을 통한 웰다잉 운동 전개의 필요성을 희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