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계류 중인 일명 ‘조력존엄사법(의사조력자살 합법화)’을 두고 사회적 논의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기독교계 내부에서도 인간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 생명 주권에 대한 도전이라는 비판이 팽팽히 맞섰다.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이사장 지형은 목사)는 지난 11월 28일 서울 성동구 성락성결교회에서 ‘기독교인이 바라보는 조력존엄사’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조력존엄사 법안이 발의된 현실 속에서 기독교 생명관에 입각한 공적 논의와 교회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발제자들은 법적·윤리적 쟁점을 넘어 임종기 환자의 고통과 돌봄 환경의 한계 등 목회 현장의 실질적 문제까지 다뤘다.
지형은 이사장의 환영사와 이근복 원장의 취지 설명으로 시작된 세미나에서는 안해용 목사(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부원장), 박충구 박사(전 감신대 교수, 생명과 평화 연구소 소장), 이길찬 목사(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사무총장)가 발제자로 나서 법률적 이해와 찬반 입장을 개진했다.
기조강연에 앞서 안해용 목사는 조력존엄사에 대한 현행법과 개정안의 차이, 그리고 사회적 쟁점을 짚었다.
안 목사는 "현재 우리나라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방식의 존엄사는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의사가 약물을 투여하거나 처방해 죽음을 돕는 조력 사망은 불법"이라며 "그럼에도 국민 여론은 조력 사망 도입에 긍정적인 비율이 높아 사회적 논쟁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찬성 측은 자기결정권과 고통 해소를 강조하지만, 반대 측은 생명 주권 훼손과 돌봄 체계 약화를 우려한다"면서 "단순한 찬반 논쟁을 넘어 호스피스 체계 부족 등 말기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 대책과 교회의 공동체적 책임을 함께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찬성 측 "연장된 수명만큼 길어진 고통… 자율성 존중해야"
박충구 박사는 ‘조력존엄사에 대한 긍정적 입장’이란 제목의 발표를 통해, 현대 의학의 발달로 인해 죽음의 과정이 길어지고 고통스러워진 현실을 지적했다.
박 박사는 "환자가 겪는 구체적인 고통과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종교적 교리만을 앞세워 그들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것은 ‘온정주의적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칸트의 자율성 개념을 인용하며 "인간이 스스로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철학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 박사는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손상되는 경우,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종교나 국가가 개인의 행복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부정할 권리는 없다고 역설했다.
또한 "과거의 '보호자 중심' 목회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판단과 선택을 존중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며 "변화하는 현실과 대화하지 않고 좁은 세계관에 갇히는 '갈라파고스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대 측 "본질은 의사 조력자살… 사회적 약자 죽음으로 내몰려"
반면 이길찬 목사는 ‘조력존엄사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통해 해당 법안이 생명의 주권자인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이 목사는 "조력존엄사라는 용어는 자살이라는 거부감을 피하기 위해 ‘존엄’이라는 단어로 포장한 것일 뿐, 본질은 ‘의사 조력자살’"이라며 용어의 기만성을 지적했다. 그는 "성경 속 인물들도 죽기를 간청할 만큼 고통스러워했으나, 하나님은 죽음 대신 회복의 길을 열어주셨다"고 신학적 반론을 제기했다.
또한 이 목사는 조력존엄사가 합법화될 경우 경제적 어려움이나 돌봄 부족을 겪는 사회적 약자들이 타의에 의해 죽음을 ‘선택당하는’ 소위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대안으로 "죽음을 돕는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고통을 덜어줄 완화의료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호스피스·완화의료 대폭 확대 △가정 호스피스 제도화 △통증 관리 시스템 개선 등을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다.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는 "사회적 논의는 급속히 전개되고 있지만 교계 내부의 신학적 정리는 부족한 실정"이라며 "이번 세미나를 기점으로 죽음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교회의 공적 목소리가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