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성인 돌봄 시장에서 사모펀드를 비롯한 금융자본이 핵심 공급자로 등장하면서 고부채 경영, 조세 회피, 서비스 품질 저하 등의 부작용이 구조화되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이는 최근 사모펀드의 진입과 요양시설 임차 허용 논의가 진행 중인 한국 장기요양 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12월 발간한 ‘영국 성인 돌봄의 금융화 정책과 그 결과: 요양시설 사례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통해 영국 성인 돌봄 시장의 금융화 실태와 문제점을 12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진행된 영국 성인 돌봄의 금융화 정책과 그 결과를 분석하여, 최근 금융자본이 새로운 공급 주체로 등장하고 있는 한국 상황에 대한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하기 위해 수행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기조 하에 공공 요양시설을 축소하고 민간 중심의 시장을 형성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와 리츠(REITs) 등 금융자본이 요양시설 운영에 적극 진입하면서 시장 구조가 급변했다.
연구팀 분석 결과, 영국 요양시설 시장은 대규모 체인을 보유한 사모펀드 그룹이 지배하는 구조로 재편됐다. 성인 돌봄 중 65세 이상 노인 요양시설 시장에서 17개의 사모펀드 소유 그룹이 총 790개 시설(5만 1,385개 침실)을 운영하며 전체 시장의 11.7%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리기관 전체 비중은 81%에 달하는 반면, 공공부문은 6%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금융자본이 ‘차입 매수(LBO, Leveraged Buyout)’ 등 금융 기법을 통해 시장을 장악했다고 분석했다. LBO는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아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와 이자 비용은 요양시설의 재무 부담으로 전가된다.
연구팀은 보고서를 통해 “사모펀드는 인수 자금의 70~80%를 차입으로 조달하고, 이 차입금은 요양시설 재무에 반영돼 이자 부담이 상당히 증가한다”며 “단기간 내 시설 가치를 높여 매각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실현하려다 보니 단기 수익 압박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금융화는 ‘돌봄의 계층화’와 ‘서비스 품질 저하’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수익성을 쫓는 영리 사업자들이 자비 부담 능력(self-funders)이 있는 이용자를 선호하면서, 지불 능력에 따른 서비스 격차가 벌어졌다.
보고서는 “공공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은 소규모 시설에 주로 입소하는 반면, 자비 부담 대상자는 대형 시설을 이용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요양서비스의 품질과 접근성 면에서 계층 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복잡한 지배구조를 통한 책임 회피 문제도 드러났다. 다수의 지주회사와 자회사, 부동산 법인 등으로 얽힌 구조 속에서 실제 운영 주체와 자산 보유 주체가 분리되어, 관리 감독을 어렵게 만들고 사고 발생 시 책임을 묻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
연구팀은 “영국의 사모펀드 운영시설은 회계상 비용을 인위적으로 증가시켜 손실을 공시하면서도, 실제로는 외부 자회사에 과도한 임대료와 관리수수료 등을 지불해 자본 수익을 이전하는 이중 회계 전략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영국의 사례가 한국의 장기요양 정책, 특히 ‘요양시설 임차 허용’ 논의에 주는 경고 메시지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시설 소유와 운영을 분리하는 임차 허용이 자칫 빚을 내 시설을 인수하고 수익만 빼가는 약탈적 금융화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2021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00~2017년 미국 내 1만 8,000여 개 요양원을 분석한 결과 사모펀드 인수 후 입소자의 90일 내 사망률이 약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NBER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의 원인으로 숙련된 간호 인력(RN)의 12% 감축을 지목했으며, 인력 부족 상황에서 환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항정신병 약물을 투여하는 빈도가 유의미하게 높아졌음을 확인했다.
로즈벨트 연구소와 '사모펀드 이해관계자 프로젝트(PESP)'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모펀드는 요양원의 부동산 자산을 매각한 뒤 다시 임대하는 ‘세일 앤 리스백(Sale-and-Leaseback)’ 방식을 빈번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급등한 임대료와 막대한 이자 비용은 운영 회사의 재무 부담으로 전가된다. 시설 운영 예산은 축소되는 반면, 창출된 수익은 사모펀드로 집중되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되어 돌봄 서비스의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국내 역시 보험사와 사모펀드가 요양 사업을 차세대 핵심 수익원으로 낙점하고 프리미엄 요양시설과 실버타운, 케어 플랫폼 등에 투자하고 있다. 요양시설의 경우 토지 매입비 등 대규모 초기 투자 비용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정부에 요양시설 임차 허용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으며, 재가 요양 서비스 부수 업무는 일부 허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설 임차 규제의 경우 2026년 초 현재까지도 찬반 논란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시장 확대를 가로막는 규제이자 쟁점으로 남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팀은 ▲시설 임차 허용에 대한 신중한 검토 ▲법인 지배구조 및 지분 전면 공개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자의 연결재무제표 제출 의무화 ▲이상징후 조기경보 시스템 등 상시 감독 체계 구축을 대안으로 제안했다.
연구팀은 제언을 통해 “단순한 사후적 감독체계는 고도로 조직화된 금융화된 공급자의 운영 실태를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공공 책임성을 제도적으로 명시하고 재정·서비스·운영의 삼중 책무성을 중심에 두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