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경구용 약물을 복용해 조력사망(VAD)를 선택한 50대 여성이 신장과 폐 등 주요 장기를 기증했다. 이는 '주사 투여'가 아닌 '경구용 약물 자가 투여' 방식을 통한 조력사망 후 장기 기증이 이루어진 세계 최초의 사례다.
최근 호주 빅토리아주 장기·조직 기증 조정기관(DonateLife Victoria)에 따르면, 카렌 던컨(Karen Duncan, 55) 씨는 지난 2024년 8월 퇴행성 신경계 질환인 운동신경 질환(MND)을 진단받았다. 그는 걷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기능 저하가 더 심해지기 전에 임종 시점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며 조력사망을 선택했다.
호주 빅토리아주는 조력사망 시 원칙적으로 환자 본인이 약물을 직접 먹는 '경구용 자가 투여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의료계에서는 경구 복용 방식의 경우 사망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장기 기능 보존이 어렵다고 보았으며, 이전까지의 조력사망 후 장기 기증 사례는 모두 의료진이 정맥 주사로 약물을 투여해 빠르게 사망한 경우였다.
던컨 씨는 조력사망을 준비하며 장기 기증 의사를 지속적으로 밝혔으나, 의료진으로부터 경구 투여 방식의 사망 시간 지연 문제로 기증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러나 던컨 씨는 약물 복용 후 사망까지의 시간이 비교적 짧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자택 대신 병원을 임종 장소로 선택하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결국 던컨 씨는 병원에서 가족과 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약물을 직접 섭취했고, 39분 만에 사망했다. 사망 직후 그의 폐, 신장, 심장 판막은 이식 목적으로, 안구 조직은 MND 연구를 위해 기증됐다. 의료진은 이번 사례를 통해 일정 조건 하에서는 경구용 자가 투여 약물 조력사망 이후에도 기증이 가능함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유가족인 던컨 씨의 딸 브로디 콕스는 "이번 사례가 세계 최초라는 것도 몰랐다"며 "기증이 됐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하늘에서 알게 되시면 정말 기뻐하실 것이며,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삶의 시간을 선물했다"라고 말했다.
디킨 대학교 도미니크 마틴 교수는 장기 기증에 대한 압박으로 조력사망 시점을 앞당겨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빅토리아주는 윤리학자들과 협의하여 새로운 지침을 마련했다. 기관 측은 장기 기증 논의가 조력사망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자율적 의사결정 보호와 이해상충 방지를 위해 '조력사망 결정'과 '기증 결정'을 절차적으로 분리했다. 이에 따라 장기 기증 관련 논의는 당사자가 조력사망 허가를 받은 뒤에만 시작할 수 있도록 규정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