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에서 초·중·고등학생 자살자 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한 가운데, 기존 상담 체계의 한계를 인정하고 출발한 온라인 공간이 청소년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일본의 비영리법인 라이프링크가 2024년 3월 개설한 '카쿠레테시마에바 이이노데스(かくれてしまえばいいのです, 이하 카쿠레가)'가 그 주인공이다.
'숨어버리면 된다'는 뜻의 이 사이트는 개설 2주 만에 접속 100만 건을 넘겼고, 같은 해 10월 누적 1,100만 건을 돌파했다.
◇ 전체 자살은 줄었는데, 청소년만 늘었다
카쿠레가가 탄생한 배경에는 역설적인 통계가 있다. 후생노동성·경찰청의 2025년 확정치 기준, 일본의 전체 자살자 수는 1만9,188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2만 명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나 초·중·고등학생 자살자는 538명으로 전년보다 9명 늘어 역대 최다를 경신했다. 남학생 258명, 여학생 280명이었으며, 특히 중학생과 고등학생 남학생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2학기가 시작되는 시기와 긴 방학이 끝나는 시점에 집중되는 패턴이었고, 부모와의 불화로 인한 자살도 2022년 38건에서 2025년 53건으로 늘었다.
전체 자살률은 떨어지는데 청소년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현상은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줬다. 라이프링크 대표 시미즈 야스유키는 이 흐름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2024년 10월 WHO 정신건강 포럼에서 "아동·청소년 자살 증가는 한국, 미국, 스웨덴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SNS와 인터넷의 영향 가능성도 거론했다.
◇ 응답률 30%의 벽, "상담을 강요하지 않는다"
카쿠레가의 출발점은 기존 상담 체계에 대한 진단이었다. 일본의 SNS 기반 자살예방 상담은 응답률이 30~40%에 머물러 있다. 전화 상담은 20~30%로 더 낮다. 도움을 요청한 청소년 열 명 중 서너 명만 상담사와 연결되는 셈이다.
라이프링크가 주목한 것은 이 수치 너머에 있는 청소년들이었다. 상담 전화를 걸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것조차 하지 않는 아이들, SOS 신호 자체를 꺼리는 청소년에게 "상담하세요"라는 메시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시미즈 대표는 이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 전혀 다른 접근을 택했다. 상담을 권유하는 대신,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카쿠레가는 2024년 3월 1일, 일본 자살대책강화월간 첫날에 문을 열었다. 후생노동성 보조사업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며, 익명·무료·24시간 접속이 가능하다.
사이트의 철학은 이름에 담겨 있다. '카쿠레테시마에바 이이노데스', 직역하면 '숨어버리면 되는 거야'다.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다'는 고립감에 처한 아이와 젊은이들에게 '여기로 와도 된다'는 메시지를 건네며,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안식처를 표방하고 있다.
안내 캐릭터 '아무 상관없는 할머니'는 이용자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존재로 설정됐다. 이미지 전체를 인기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가 맡아, 청소년이 거부감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콘텐츠 구성도 '상담'이 아닌 '머무름'에 초점을 맞췄다. 비슷한 상황의 이용자들이 남긴 글을 읽을 수 있는 게시판, 유명인의 체험담, 스트레스 해소용 게임 등이 마련돼 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심리적 위안과 생존의 의지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카쿠레가는 개설 2주 만에 접속 100만 건을 넘겼고, 2024년 10월 기준 누적 접속은 1,100만 건을 초과했다. 기존 상담 채널에 닿지 못했던 청소년들이 카쿠레가로 몰려든 것이다.
◇ 한국도 같은 위기 속에 있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교육부 집계 기준, 2023년 초·중·고등학생 자살 사망자는 214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학생 10만 명당 자살률은 4.1명이다. 서울 학생의 자살시도 건수는 2021년 180명에서 2024년 677명으로 3배 이상 급증했으며, 2021년 1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전국적으로 하루 평균 19.37명의 학생이 자살시도 또는 자해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상담 인프라도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국 초·중·고교에 설치된 상담실 '위 클래스'는 4개 학교 중 3개 정도로 갖춰져 있으나, 상담 건수는 2015년 대비 약 40% 증가했다. 정부는 2024년 1월부터 자살예방 상담번호를 '109'로 통합하고 청소년 대상 SNS 상담 채널 '마들랜'을 운영하고 있다.
◇ 법 개정 논의와 남은 과제
일본에서는 청소년 자살 위기를 법률로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자살대책을 추진하는 의원 모임'이 자살대책기본법을 개정해 아동 자살 대책을 법률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으며, 실제로 2025년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한국 정부도 2025년 9월 국가자살예방전략을 발표하며, 2024년 기준 자살률 28.3명을 2029년까지 19.4명, 2034년까지 17.0명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5년 내 자살자 수를 1만 명 이하로 줄이고, 10년 내 OECD 자살률 1위를 벗어나겠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학생 자살은 학업 스트레스라는 단일 원인이 아니며, 가정·교우 관계·정신건강·온라인 환경 등 복합적 요인을 분석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카쿠레가의 사례는 기존 상담 인프라의 양적 확충만으로는 모든 위기 청소년에게 닿을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상담을 원하지 않거나 상담에 접근조차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손을 내밀 것인지, 문턱을 넘기 힘들어하는 위기 청소년들을 위해 한국 사회도 맞춤형 대책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