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원봉사 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하고 죽음준비교육과 웰다잉의 개념을 국내에 최초로 도입한 각당복지재단 설립자 김옥라 명예이사장이 지난 8월 30일 10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연세의료원 신촌장례식장에는 사회 각계각층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으며, 한 세기에 걸쳐 우리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선구자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가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김옥라 명예이사장 고별예배 유튜브 영상 ©각당복지재단 유튜브
국경을 넘나든 여성 지도자의 삶
고인은 1918년 강원도 간성에서 태어나 1937년 감리교신학교에 입학했으며, 일본 도시샤여자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석사 및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6.25 전쟁 당시 부산 피난 시절 걸스카우트 운동을 시작해 한국걸스카우트 중앙연합회 간사장 및 이사로 봉직했으며 , 세계감리교여성연합회 세계회장(1981-1991)을 역임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 서울시민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일본 도시샤여대와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불모지에 '체계적 자원봉사'의 씨앗을 뿌리다
김옥라 명예이사장은 자원봉사의 개념조차 미약했던 35년 전인 1986년, 순수 사재를 출연하여 각당복지재단의 전신인 '재단법인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를 설립했다. 이 기관은 비행청소년 상담, 호스피스 등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분야의 봉사 희망자를 발굴해 전문 교육을 시킨 후, 보호관찰소와 병원 등 현장에 배치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단순한 시혜를 넘어 자원봉사를 전문적인 영역으로 격상시킨 선구적인 활동이었으며, 재단을 통해 교육받고 현장에서 활동한 인력은 1만 명이 넘는다.
남편과의 사별, '죽음준비교육'이라는 사회적 담론으로 승화
김옥라 명예이사장의 삶에 또 다른 전환점은 1990년 남편 라익진 전 산업은행 총재와의 사별이었다. 극심한 슬픔 속에서 약 1년간 두문불출하며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한 그는, 이 경험을 1991년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를 설립하고 국내 최초로 '죽음'을 주제로 한 공개강좌를 여는 것으로 승화시켰다. 이는 죽음이라는 어두운 주제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려 '잘 살기 위한 준비'로서의 웰다잉 교육을 시작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남편의 아호인 '각당(覺堂)'을 따 재단명을 재정비하고, 이화여자대학교와 서강대학교 등에서 죽음준비교육을 직접 가르치며 웰다잉 문화 확산에 헌신했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거인'과 신앙의 유산
고인의 삶은 신앙과 사랑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막내아들인 라제건 각당복지재단 이사장은 "어머니는 가까이서 평생을 보아도 변함없는 거인이셨고, 그 거인을 거인이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이었다"며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소명의식이 가슴 깊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며느리인 오혜련 각당복지재단 회장은 시어머니의 삶을 '사랑'으로 요약하며 "두 발은 대지에 굳게 딛고, 두 눈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었던 가슴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품은 여인"이라고 평했다. 한인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고인이 "스스로 '성실성만은 내게 주신 큰 은사'라고 했다"며, "옳다고 여기면 불이익도 감수하고 관철하는 용기 있는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고인은 남편 묘 옆인 팔당 선산에 안장되었으며 , 유족으로는 라제민, 라제훈, 라제관, 라제건 4형제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