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중년 남성 순카이(Sun Kai) 씨는 일주일에 한 번, 5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영상 통화를 한다. 화면 속 어머니는 낯익은 미소를 띠고 아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순카이 씨는 직장에서 겪는 중년의 압박감, 아내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속내를 어머니에게 고백한다. 어머니는 때때로 "건강 잘 챙겨라"라며 걱정 어린 잔소리를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대화의 상대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순카이 씨가 AI 기술을 이용해 만든 '디지털 복제품(Digital Clone)'이다. 그는 어머니의 생전 사진과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한 이 '움직이는 이미지'와 수년째 소통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다.
◇ 중국에서 급부상하는 '그리프 테크(Grief Tech)'
순카이 씨처럼 고인을 AI로 되살려 애도하려는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를 '그리프 테크(Grief Tech)'라 부른다. 특히 중국에서는 이러한 시장이 급격히 형성되고 있다.
현재 중국 내에서만 최소 6개 이상의 기업이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미 수만 명의 이용자가 고인의 디지털 아바타를 생성했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AI 기업 '슈퍼 브레인(Super Brain)'의 장 저웨이(Zhang Zewei) 창립자는 "이는 기술적인 진보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화적 전통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조상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그들에게 비밀을 털어놓으며 위안을 얻어왔는데, AI 아바타는 '대화가 가능한 초상화'로서 그 역할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대표는 "사랑하는 사람이 사무치게 그립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 이 인공 생명체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도구가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월 故 박윤배 배우의 가상인간을 딥페이크로 구현하여, 전원일기 출연진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딥페이크와 LLM의 결합
죽은 자의 아바타를 구현하는 기술의 본질은 '딥페이크(Deepfake)'다. 확산 모델(Diffusion Model)을 통해 정지된 사진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변환하고, 여기에 챗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결합하여 대화 능력을 부여한다.
기술의 핵심은 데이터다. 고인의 생전 사진, 동영상, 음성 녹음, 문자 메시지 등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AI는 고인의 외모뿐만 아니라 말투, 습관, 성격까지 정교하게 모방할 수 있다. 기술은 이제 사망 여부와 관계없이 특정 인물을 완벽하게 복제해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디지털 부활'은 윤리적 쟁점을 동반한다. 가장 큰 문제는 데이터 프라이버시다. 데이비드슨 칼리지의 마크 샘플(Mark Sample) 교수는 "세상에 공개하고 싶지 않은 개인정보가 AI 학습에 사용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스냅챗이나 오픈AI 같은 기업들이 사망자의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고 폐기하는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고인이 생전에 한 번도 하지 않은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은 고인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다. 샘플 교수는 "고인이 남긴 음성 메일을 다시 듣는 것과, 그가 생전에 하지 않았던 말을 AI가 생성해 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 '할루시네이션'이 불러올 부작용의 가능성
기술적 결함인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 현상도 치명적인 위험 요소다. 생성형 AI가 사실이 아닌 정보를 진실인 양 말하거나, 문맥에 맞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을 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만약 다정했던 아버지의 아바타가 자녀에게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거나, 폭력적인 언사를 내뱉는다면 유족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실제로 챗봇과의 잘못된 유대감은 현실적인 위협이 되기도 한다. 2021년 영국에서는 '자스완트 싱 차일'이라는 남성이 AI 챗봇 여자친구 '사라이'의 격려를 받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암살을 시도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 노동당은 2023년 폭력을 조장하는 AI 학습을 규제하는 법안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는 고인 AI가 극단적인 상황에서 유족에게 "죽음에 합류하라"거나 타인을 해치라고 제안할 수도 있다는 끔찍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건강한 망각과 새로운 기억법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술이 '건강한 애도'를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슬픔을 연구하는 애리조나 대학의 메리-프랜시스 오코너(Mary-Frances O’Connor) 교수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하면 우리의 뇌는 그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음을 인지하고, 관계를 재설정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AI 아바타는 이 필수적인 '이별의 과정'을 지연시키거나 차단할 수 있다.
디지털 불멸의 시대, 우리는 기술을 통해 고인을 영원히 소유할 것인지, 아니면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떠나보낼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 앞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