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의 사후관리 중심 자살예방 체계를 비판하고 AI 기술 도입과 국가 책임 강화를 통한 실효성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차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 공동 주최로 ‘AI와 정신건강: 자살예방을 위한 통합과 협력’을 주제로 한 2025 정신건강 국회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번 세미나는 구조적 한계에 봉착한 현행 정신건강 정책을 진단하고, 궁극적으로 자살률 감소와 국민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예방·회복 중심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기획됐다.
2023년 기준 국내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7.3명으로, OECD 평균인 11.1명의 두 배를 상회한다. 지난해 자살 사망자는 잠정 1만 4,439명으로 집계되어 하루 평균 약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심각한 수준이다. 보건복지부는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연간 5조 3,895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상황에 비해 대응 체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국민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12.1%에 불과하며, 교육 수혜율은 4%에 그치고 있다. 특히 1인당 정신건강 예산은 8,710원 수준으로, 정부의 대응이 예방보다는 사후관리에 편중되어 있어 조기 개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 김용 전 WB 총재 “한국에 위기 도래… 사회 통합과 혁신 기술 접목해야”
기조 강연에 나선 김용 전 세계은행(WB) 총재는 한국의 자살 현황에 대해 “충격적이고 걱정이 앞선다. 글로벌 역사상 한국에 위기가 온 게 아닌가 싶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자살률이 높은 국가는 사회적으로 통합되지 않는다고 한다”며 자살 문제를 사회적 통합의 실패 징후로 해석했다.
김 전 총재는 “정신건강 문제와 자살 예방을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회와 경제 전반에 걸친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민들이 함께 노력해야 하며,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공공, 민간, 학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한국의 저력을 언급하며 “한국은 다른 국가들이 해결하지 못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극복해 왔다”면서 “이제 ‘한국은 그런 많은 어려움을 딛고 어떻게 사회 통합을 이뤘느냐’라는 질문을 받아보고 싶다”고 전했다.
해결 방안으로는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기존 검증된 방법과 더불어 AI와 같은 혁신적인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면 자살 예방 역량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 나종호 교수 “자살은 사회적 타살, 국가 예산 및 리더십 확충 시급”
주제 발표를 맡은 나종호 미국 예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 책임이 있는 죽음”이라며 국가 주도의 강력한 예방 정책을 주문했다. 나 교수는 “국민의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 국가의 책임을 알 수 있다”며 노르웨이의 ‘제로 수어사이드 비전(Zero suicide vision)’을 예로 들어 ‘단 한 사람도 자살로 잃을 수 없다’는 가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나 교수는 일본의 성공 사례를 구체적인 벤치마킹 모델로 제시했다. 일본은 2006년 아베 총리 주도로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자살을 공공정책 차원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채무상담 및 긴급 생계지원 ▲과로사 방지법 제정 ▲농촌·고립 지역 찾아가는 서비스 ▲보건소-경찰-복지기관 협력 강화 등 전방위적 대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2003년 3만 4,000명에 달했던 연간 자살자 수는 2017년 2만 1,302명으로 37.3% 감소했으며, 2019년에는 2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열악하다. 나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OECD 가입국의 보건예산 중 정신건강 분야 비중은 평균 5%인 반면, 한국은 1.7%로 일본(5%)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021년 기준 자살 대책 예산 역시 일본은 8,300억 원인 데 비해 한국은 450억 원에 그쳤다.
나 교수는 “미국에서는 자살 예방에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돈과 국가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자살 예방은 사회 정의의 문제이며, 새 정부의 첫 번째 과제는 자살 예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여야 의원 “AI는 자살예방의 핵심 파트너… 입법·예산 지원 약속”
이번 세미나를 주최한 여야 의원들은 AI 기술을 활용한 자살 예방 체계 구축과 법적 안전망 강화에 한목소리를 냈다.
차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살률을 “정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라고 정의하며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죽음을 막기 위해 AI를 자살예방과 정신건강 회복의 중요한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 의원은 주제 발표를 통해 AI 기술을 통한 정신건강 개선 가능성을 소개하며 “사회 대전환기의 해법으로 법과 제도 측면에서 보다 촘촘한 ‘정신건강 안전매트’를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지역사회와 민관 협력 모델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 역시 “기술과 제도의 통합, 사람 간의 연결이 자살 예방의 핵심 열쇠”라고 강조했다. 한 의원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위험 예측, 챗봇 상담, 음성·표정 기반 위기 탐지 등 AI 도구는 빠르고 정밀하며 따뜻한 돌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변화는 기술만으로 이룰 수 없으며 정책과 국민의 지지가 동반되어야 한다”면서 “의료, 복지, AI 등 각 분야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통합적 모델을 모색해야 하며, 입법과 예산을 통해 AI 기반 체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